노란 프리지어 한 다발과 치즈케이크를 들고 현관문을 열자, 주방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던 엄마의 달뜬 목소리가 들렸다.
“왔나, 자고 갈끼제? 니 방에 이불도 바꿨다. 니 좋아하는 색으로.”
현관에서 가까운 방이 연수가 쓰던 방이다. 들어서면서 바로 방문을 열었다. 보랏빛 이불과 베개가 눈에 들어왔다. 그럼 그렇지 연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식탁에는 밑반찬과 수저가 놓여 있었고 주방은 꽃게 냄새로 가득했다.
“내가 손님이야? 대충 먹으면 되지.”
“무슨 소리고, 엄마한텐 니가 손님보다 더한 여왕님이지.”
꽃게 찌개에 대파를 썰어 넣는 엄마의 말투가 평소보다 달짝지근했다.
“엄마, 로또라도 당첨됐어? 기분 좋아 보이네.”
연수가 밥을 푸면서 말했다. 꽃게 찌개를 식탁 가운데 놓고 마주 앉은 엄마는 반찬을 앞으로 밀어주며‘우리 여왕님 많이 드이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낮에 진이 이모한테 전화 왔더라. 사위가 바람을 피워서 사네, 못 사네 난리도 아이란다.”
엄마가 찌개를 한 숟갈 뜨며 말했다. 진이 이모는 엄마의 분식집에서 십수 년을 일했다. 까다로운 엄마 성격을 맞춰주고 나이도 엇비슷해 둘은 친동기처럼 지냈다. 이 년 전 재개발로 엄마가 분식집을 정리하자 맞벌이하는 딸네 집에 손녀를 봐주러 갔다. 엄마는 연수의 밥 위에 꼬막무침을 얹으며 진이 이모에게 들은 이야기를 시시콜콜 옮겼다.
“결혼을 꼭 해야 되나? 요새는 여자들도 자기 일 하믄서 잘만 살더구먼.”
“그건 내가 할 소리 같은데.”
“남자란 것들은 당최 믿을만한 족속이 못 된다 아이가.”
엄마는 지인이나 그들의 자식들이 결혼에 실패한 사례를 줄줄이 늘어놓았고, 결혼으로 부모 자식간에 사이가 멀어진 집들이 한둘이 아님을 과장해서 설명했다. 딸자식 나이 서른일곱이면 중매를 부탁한다거나 소개팅이라도 하라고 등을 떠밀 텐데 엄마는 오히려 반대였다. 지인들이 사진을 들이밀 때마다 직업이 변변찮다, 키가 작다, 집안이 별로라며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연수가 대학 시절 사귄 남자 친구를 못마땅해했고, 이 년 전 서로 결혼까지 생각하고 만나던 윤도 마뜩잖아했다.
“엄마, 정말 그 사람들이 맘에 안 든 거야? 혹시 내가 결혼하는 게 싫은 건 아니고?”
“그기 아이고……, 참, 니 학교도 가까운 데로 옮겼는데 인자 다시 집으로 들어와야지. 퍼뜩 집 내놔라. 새 학기부터 집에서 다니게.”
이거다. 엄마가 평소보다 흥분되고 다정할 때는 뭔가를 원할 때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말끝마다 붙이는 ‘니가 뭘 몰라서 그렇지’라는 말로 어린애 취급당하는 것도 싫고 ‘니 때문에’ 라거나 ‘니 밖에’라는 단어들은 숨이 막혔다. 통근 거리가 멀어 학교 근처로 작은 아파트를 얻어 나간 건 삼 년 전이다. 자차로 이동하면 40분이 채 걸리지 않아 굳이 집을 구할 필요는 없었지만, 엄마로부터 독립할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이 년 만에 다시 시내 학교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학급 수가 줄면서 교사 정원이 줄었고 하필이면 연수가 그 대상이었다.
“아냐, 새 학기에 맡은 업무가 많아서 야근도 자주 해야 해. 혼자 있는 게 일하기 좋아. 그리고 나 서른일곱이야. 다른 집은 같이 사는 자식도 내보낼 판이라고.”
“내사 니 밖에 더 있나. 그라믄 금 토 일은 집에 와서 지내라. 혼자 밥 먹기 싫다.”
엄마가 작정한 듯 말했다. 이쯤에서 타협해야 하나. 아니면 이틀로 줄이자고 해야 하나 갈팡질팡하는 사이 엄마가 또 훅 치고 들어왔다.
“근데, 니 승진 준비는 잘하고 있제. 희숙이는 장학사 시험인가 뭔가에 합격했다 카데”
희숙은 엄마의 고향 선배 딸이다.
“난 승진에 관심 없다니까.”
“야가 무슨 소리하노. 니도 남들처럼 교감, 교장 해 봐야지. 희숙이도 하는데 니가 뭐 모자라서 못한단 말이고.”
“난 관리자가 되고 싶지 않아.”
연수가 거실 창가에 다가서자, 엄마의 말이 등 뒤로 따라왔다.
“다 니 좋자고 하는 말이다. 니가 아직 젊어서 뭘 몰라서 그렇지.”
연수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 엄마의 다음 말은 뻔했다. 이제 곧 한바탕 신세 한탄을 늘어놓을 테지.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탓인지 예민해진 연수는 엄마와의 대화에 지쳐갔다.
“엄마가 내 생각하는 거 다 아는 데, 이제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도 나한테서 좀 자유로워져.”
“내가 와 ……”
“나 때문에 돌아왔다는 말 더 이상 하지 마. 그 남자 의처증 있어서 맞고 살았다는 거 나 다 알아.”
연수가 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듯 내뱉었다. 엄마가 데리러 온 그날, 연수는 엄마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두렵거나 외롭지 않을 줄 알았다. 이전과는 다른 외로움이 자신을 힘들게 해도 엄마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엄마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엄마의 말에 상처 입고 소리치고 싶다가도 막상 엄마 얼굴을 보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십 년 전 진이 이모와 엄마가 나누던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억울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 달라질 건 없었다.
엄마가 내뱉은 사랑이니 보호 따위의 변질된 말들이 연수의 머리 위로 떠다녔다.
“그만 해 제발.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아빠한테 왜 그랬어? 그날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만 않았어도…….”
연수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오자, 엄마가 입을 벌린 채 쳐다봤다. 그날 밤 엄마 아빠의 다투는 소리에 잠이 깼지만 연수는 일어날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이불 속에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백까지 세었을 때 차라리 우리 셋같이 죽자는 엄마의 울음 섞인 소리가 이불속까지 따라 들어왔다.
“그래 말한다고 다 죽나? 화가 나믄 뭔 소릴 못 하노. 그래서 내 땜에 네 아빠가 죽었단 말이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엄마가 시뻘게진 얼굴로 연수를 쏘아봤다. 서로에게 닿지 못한 말들이 허공에서 부딪혀 튕겨 나왔다. 연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십칠 년간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응어리를 토해 냈지만 후련하기는커녕 날카로운 쇳조각에 찔린 것처럼 예리한 통증이 온몸을 찔러댔다. 연수는 벌게진 눈으로 화장실을 나온 자신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엄마를 외면하고 가방을 챙겼다.
“니, 설마 이대로 가나?”
엄마가 나가려는 연수의 손을 잡았다. 잡힌 손을 빼내자, 엄마가 비틀거리다 주저앉았다. 연수는 등 뒤의 엄마를 모른 척하고 집을 나왔다. 바람 때문에 현관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혔고, 그 사이로 울음소리가 들렸다. 엄마, 우리가 서로를 떠날 수 없다는 건 엄마도,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처럼은 아니야. 엄마를 잃고 싶지 않아. 오래오래 마주 보고 싶어. 그러려면 …… 연수는 계단을 내려오며 중얼거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