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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Nov 23. 2024

등 뒤의 사랑 6

  4년 전, 베트남으로 파견교사를 신청했다는 말에 엄마는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눈만 끔벅였다.

  -딱 삼 년이야. 엄마, 방학 되면 올게. 엄마가 와도 좋고.


  이번만큼은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말에 엄마는 개던 빨래를 밀어놓고 벽을 향해 돌아앉았다. 설거지 하던 연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연수가 울타리 밖의 세상을 기웃거릴 때마다 부채감과 연민이 붙들었다. 파견교사는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 본 일이다. 서류를 제출하면서 어쩌면 엄마를 위해서도 잘하는 일일지 모른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엄마는 며칠 동안 연수가 깨기 전에 가게로 나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열린 문틈으로 우두커니 벽에 기대앉은 엄마를 볼 때마다 흔들렸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각오했던 것보다 담담한 것 같았던 엄마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일주일쯤 뒤였다. 

했던 말을 반복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일 때만 해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가게에 들렀을 때 진이 이모는 엄마가 주문을 잘 못 알아듣고 엉뚱한 음식을 만드는가 하면 손님에게 음식 간이 맞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날, 진이 이모의 전화를 받은 건 6교시 수업을 끝내고 자리에 앉으려던 참이었다. 조퇴를 내고 율제병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뒤였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하다며 입원을 권했다. 전에도 어지럼증으로 쓰러진 적이 있던 엄마는 링거를 뽑자 대수롭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 집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연수는 엄마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다음 날 오전 내내 검사로 지친 엄마가 잠이 들었을 때 담당 의사가 연수를 찾았다. 의사는 우울과 불안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높고 강박증이 심해 약물치료와 정신과 상담을 함께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당분간 혼자 지내지 않도록 해 주시고, 가급적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가족분들이 신경 써 주세요.”

  진료 일정을 잡고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은 연수는 복도로 나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가락 사이로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상관하지 말고 떠나라고 했지만, 눈빛은 허공에 머물렀고 어깨는 제멋대로 움찔거렸다. 상담을 거부했고 받아온 약은 주방 서랍에 쌓여갔다. 가게에 딸린 쪽방에서 지내는 진이 이모에게 당분간 가게 문을 닫고 낮 동안 엄마와 지내달라고 부탁했다. 이주가 지나도 증세가 호전되기는커녕 엄마의 어깨는 시도 때도 없이 들썩였고 작은 짐승의 울음처럼 ‘으으’ 소리를 내뱉었다. 

  -어, 엄마, 엄마 왜 그래?

  엄마를 부둥켜안고 울던 그 순간 연수는 파견교사를 포기했다. 일주일에 한 번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고 영화를 보고 산책을 했다. 넉 달이 지나자, 엄마는 다시 가게 문을 열었고 연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창문을 열었다. 날은 흐렸지만, 뺨에 와 닿는 공기가 차갑진 않았다. 소파 밑에 깊숙이 청소기를 밀어 넣어 묵은 먼지를 빨아들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엄마는 다짜고짜 주말에 왜 안 왔냐고 힐난했다. 늘 이런 식이다. 걱정하는 마음보다 다그치는 말이 먼저였다. 연수는 왈칵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눌렀다.


  “미안, 엄마. 좀 바빴어.”

  “니 좋아하는 파김치하고 꼬막무침 만들어 놨는데 갖다주께.”


  연수는 파김치보다 총각김치를, 생선보다 육류를 좋아한다. 엄마는 연수가 어릴 적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은 연수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된 후 몇 번이나 취향을 밝혔지만 그때마다 피곤해졌다. 엇나간 대화보다는 차라리 침묵이 편했다. 아파트로 독립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밥을 먹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틈이 길어진다 싶으면 엄마가 반찬을 싸 들고 왔고 연수는 달갑지 않았다. 자신만의 공간에 엄마를 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도 집으로 오겠다는 엄마를 저녁을 함께 먹겠다는 말로 간신히 달랬다. 청소를 끝낸 연수는 세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좀 어때?”

  “선생님, 엄마가 저에게 미안하다고 했어요. 처음이에요. 제 손을 잡고 울었어요.”

  “그래, 그럼…… 엄마랑 화해한 거니?”

  “네, 그래도 떠날 거예요. 엄마도 저도 시간이 필요해요.”

  “잘 생각했다.”


  수속이 끝나는 대로 아빠에게 간다는 세정에게 출국일이 정해지면 알려 달라고 문자를 보낸 연수는 달아오른 얼굴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숨을 깊이 들이마셨더니 뺨의 열기가 가라앉았다. 세정이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할까 전전긍긍했던 연수에게 프랑스로 떠난다는 소식은 제 일처럼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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