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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희 Nov 25. 2022

덤으로 얻은 행복

잔잔한 바람을 따라 낙엽 하나가 내 앞으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뒤뜰에서 가까이 보는 가을은 내 것인 양 친근해서 좋고

아직은 떠남을 머뭇거리며 가을빛을 한껏 뿜어내는 먼 산은 수채화 같아서 좋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은 하늘에서 온다더니

오늘따라 하늘이 호수인 듯 쨍하게 푸르러서 내 마음도 시원해지는 것 같다.     


커피 한잔을 들고 뒤뜰에 나 앉아 음악까지 틀고 보니 웬만한 카페가 부럽지 않다.

괜스레 센티해져 그리운 사람들께 안부 전화라도 해 보고 싶은 오늘.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집 뒤편의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갈색 옷을 입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터를 고른 이유는

전원주택 단지 내에서

가장 뒤편이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전망이 좋기 때문이었다.

사방이 트여 있어 막힘 없이 멀리 까지 볼 수 있고, 사계절 내내 온전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음악이 녹아내리는 봄눈처럼 잔잔히 흐르고 토닥토닥 빗소리가 마음을 움직이는 날이면

거실 창을 통해 바깥 풍경에 넋을 놓고 있게 된다.


하지만

풍경 맛집은 고작 6개월뿐이었다.

앞쪽에 집이 몇 채 들어선 다음부터는 이쪽저쪽이 막혀 갑갑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본디 내 땅이 아니니 풍경 또한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욕심낼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뒤편으로 눈이 갔다.

‘그렇지 뒤뜰이 있었지.’

전면의 경치가 막힘 없이 좋았을 때는

별 관심 두지 않았는데, 한쪽이 아쉬우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사실 집 뒤편은 우리 땅이 아니다.

낮은 석축을 경계로 여러 명의 땅주인이 나누어 산 땅으로 현재는 빈공터로 길이 없어 관리가 안 되는 곳이다. 과수원을 하던 곳도 있고, 나무 묘목을 심어 둔 곳도 있지만 우리 집과 맞닿은 곳은 낮은 야산의 비탈진 곳 그대로이다.

왼쪽은 작은 농막이 있어 주인이 가끔 드나들지만, 우리 집 뒤편은 몇 그루의 나무와 풀만 무성하다.


순간 내가 든 생각은

땅 주인의 근심 따위는 아랑곳없이

 ‘다행이다. 당분간 이 땅의 풍경은 우리가 누릴 수 있겠네’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쓸모없이 버려진 땅처럼 보이던 곳이 너무도 친근하고 고마웠다.

나는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땅에 은근슬쩍 발을 내디뎠다.   

  

 봄엔 간지러운 햇살 아래 어린 쑥을 캐

남 먼저 쑥국을 끓일 수 있었고

난생처음 찔레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찔레꽃 붉게 핀’에서 붉은색만 있는 줄 알았던 찔레꽃은

오히려 흰색이 대부분이며

장미꽃처럼 가시가 있다는 것도,

작은 잎이 깃털 모양으로 달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찔레꽃과 채송화


여름엔 석축 뒤편을 미니 꽃밭처럼 만들고 싶어 풀을 뽑고 채송화와 금계국 꽃씨를 뿌렸다.

하지만 욕심을 너무 낸 탓인지 겨우 몇 송이의 꽃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무더운 여름 내내 수풀의 무성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가셨고


초 가을에는 울타리 너머의 3그루 금목서가 뿜어내는 짙은 꽃향기가 온 마당에 퍼져 이웃이 찾아 올 정도였다.

이곳저곳 눈만 돌리면 심심치 않게 피어 있는 쑥부쟁이며, 이름 모를 가을 들꽃과 몇 줄기 억새만으로도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주방 창가에 서면 하루에도 몇 번씩 집안으로 불쑥 들어오는 4계절의 풍경 속에는

풀숲에서 낮잠 자는 고양이와 낮은 석축 위에서 나를 감시하는 고양이들도 있다.

아마 내 것 같은 뒤뜰이 아니었으면 귀여운 녀석들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채송화위의 앙증맞은 청개구리와 금목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냥이


애초에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었던 풍경.


지금 온전히 누리고 있는 기쁨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나 덤으로 얻은 행복이라 생각하니 더 고맙게 느껴진다.

평소 과자뽑기나 음료수 뚜껑에서조차

‘다음 기회에’가 더 익숙한 나에게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한 두 개 슬쩍 얹어주는 덤에도 기분이 좋아진다.

당연하다 여기지 않고 덤이라 여기면

사소한 것도 더 고맙게 생각된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알게 모르게

덤으로 얻은 값진 것들이 많았으리라.

내가 받은 덤을 부지런히 나누고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같이 눈부신 하늘아래

국화꽃 향기처럼 은은한 가을 향내 맡으며 덤으로 얻은 행복에

입가에는 미소가, 가슴에는 정이 돋는다.         



 가을 하늘        

                          정연복          


가을 하늘은

참 좋다     

보고 또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아도 좋고     

흰 구름이 여기저기

떠다녀도 좋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깊고 고요한 바다 같다     

흰 구름이 많은 하늘은

폭신폭신한 이부자리 같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가만히 서 있으면     

가슴이 시원하게 열리고

나도 문득 하늘이 된다.


앞마당에서 본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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