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엘에게 2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등 Apr 06. 2024

외도에서

외도에서


L


제비꽃 몇 개 캐다가 화단에 심었는데 한동안 시들했어요.

그런데 어제 비로 생기를 찾은 듯 가는 꽃대가 일어섰지요.

이 작은 안심이 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제 마음과 노니는 철없고 순진한 바다로 가고 싶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훌쩍 혼자 떠나겠지만

한 달 전부터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던 사람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시동을 걸고 가벼운 헛기침을 합니다. 그녀에게 웃어 보입니다.

-날씨가 좋지요?- 내가 물었고

그녀는 그늘진 웃음으로 대답했지요.

잠시 쓸쓸함이 덧칠을 하고 갔지만 사는 일이 늘 제멋대로 인 걸요


통영을 지나 거제도 해금강으로 갔습니다. 두어 번 이 길을 밟았습니다만

올 때마다 느낌이 새로운 것이

지금은 봄이고 산과 나무 모두 눈빛들이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바다야 늘 그 자리, 그 모습입니다


L


지난번 詩에 내가 물밑에도 길이 있다고 한 말을 믿지 않으셨지요?

그러나 보셔요.

어리광 부리는 갈매기들과 일그러진 바위들 사이에 길은 하얗게 드러나고

전설이 된 몇 개의 섬과 떠도는 독수리 한 마리 모두 물밑에 있었습니다.

-지난겨울에 그와 이곳에 왔었습니다. 그때는 추워서 봄이 오면 다시 오자 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동문서답하였지요. 바다를 지나는 동안엔 슬픔을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곳에서 드라마 '겨울연가' 마지막 회가 촬영이 되었지요?-

배는 막 천년송이 자라는 사자바위 옆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그녀도 알게 될 겁니다 눈물을 갖고 있는 이 순간은 아직 사랑하던 시절이라는 것을,


L


그리움이란 허상에 어떤 것을 세울 수 있을까요.

가령 나는 이 외도를 돌아보며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 섬, 인공의 미는 마치 파라다이스 같았습니다.

쓸쓸한 섬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정돈된 길이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요.

그림 같은 벤치가 놓여있고 하얀 테라스가 보이는 별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자꾸 먼바다만을 바라보았는지요.

밀려온 파도는 바람이 되어 날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지요?- 그녀가 물었고

-좋은 일이지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L


나는 지금 돌아가는 선상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외도에서 알게 되었어요.

사람이 섬에도 길을 만드는 이유를.

하늘이나 바다나 길을 만드는 이유를.

버리고 다시 찾게 되는 그리움의 실체를.

외로움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왜 나를 버렸을까요? - 눈을 감은 채 그녀가 물었습니다.

-그런 질문은 떠나기 전에 하는 거예요. 질문하지 않았다면 보내주세요 -


외도가 멀어집니다.

외도는 멀리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가끔 어떤 사람은 섬이 되고 싶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 외도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