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우울하였습니다. 여우에게 고깃덩어리를 빼앗긴 것도 분하긴 하였지만 그보다는 자기의 어리석었던 행동이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해서 숲 속으로는 들어갈 생각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자신을 비웃고 바보라고 손가락질할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까마귀는 벌써 이틀째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날개에 힘이 빠지고 가슴이 콩닥거리며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여우가 밉거나 원망스러운 것은 두 번째 일입니다. 아무래도 너무 쉽게 속아 넘어간 것이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없기만 합니다.
까마귀가 작은 조약돌을 부리로 콕콕 박고 있을 때 까비가 찾아왔습니다. 까비는 사촌 까마귀지만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까비는 그냥 가만히 까마귀의 옆에서 이리저리 함께 조약돌을 고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제 기운을 좀 차리고 무얼 좀 먹어보도록 해 봐. 그리고 그 사건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어째서 동물들은 너를 속인 여우를 나쁘다고 말하지 않고 당한 너를 어리석다고 흉을 보는지 모르겠어. 이건 말도 안 돼.”
까비는 화가 나는 듯 입에 문 조약돌을 멀리 던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까마귀에게는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까마귀는 눈자위가 붉어지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만둬, 내가 똑똑했다면 고기를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놀림거리가 되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그 고기는 까마귀 마을 잔치에 쓸 고기였어. 그 소중한 고기를 잃어버렸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까마귀의 눈에서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그 모습을 본 까비의 마음은 더욱 아팠습니다. 친구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던 까비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습니다.
“우리 여우를 고소하자. 고기를 빼앗아 간 것은 절도죄라고! 그것도 속여서 가져갔으니 사기절도죄야. 당연히 벌을 받게 해야 해! 빼앗긴 고기도 다시 찾고 말이야. 그리고 네가 어리석지 않다는 것도 다른 동물들에게 알려줘야 하잖아.”
까비는 마치 해답을 찾은 듯 까마귀를 돌아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까마귀는 아직 눈물에 젖은 촉촉한 눈을 휘둥그레 떴습니다.
“고소를 한다고?”
“응, 억울한 동물 누구라도 고소할 수 있다고 했어. 고소장을 쓰는 건 부엉이 변호사에게 맡기고 변호를 부탁하는 거야.”
“하지만 고소를 했다가 더 조롱을 당하면 어떡하지?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까마귀는 다시 시무룩해진 목소리가 됐습니다. 그리고 괜히 작은 조약돌을 콕콕 찍어보고 있을 뿐입니다.
“일단 변호사에게 가서 의논을 해 보자.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알게 될 거야. 자, 용기를 내 보는 거야.”
까비는 까마귀의 떨리는 날개 끝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정한 눈빛으로 까마귀를 바라보았습니다. 까마귀는 까비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자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물고 가며 조롱하던 여우의 눈빛도 떠올랐습니다. 분하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둘은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껏 날아올랐습니다.
까마귀가 여우를 고소했다는 소문은 숲 속에 금방 퍼졌습니다.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모두 까마귀와 여우에 대한 재판 이야기였습니다. 한 편 여우는 원래 꾀가 많은 것뿐인데 그것이 무슨 죄가 되겠냐고 툴툴 거리는 동물이 있기도 하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조그맣게 대꾸하는 동물도 있었습니다.
딱따구리는 법에 대해서 제법 아는 것처럼 여우는 무죄이고 까마귀는 똑똑해지는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재판장처럼 나무를 부리로 딱딱딱 세 번을 쳤습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까마귀가 어리석기 때문에 분명히 재판에 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어떤 동물은 변호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아는 척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까마귀의 변호사는 부엉이가 되었으며 여우의 변호사는 승냥이가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공정하기로 유명한 사슴이 판사가 되었다는 것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이 흥미진진한 재판이 빨리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재판 날입니다. 재판이 진행될 숲 속 떡갈나무 아래는 벌써 많은 동물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습니다. 떡갈나무 바로 앞에 재판장 사슴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앞에 고소를 한 원고 측 자리와 나란히 고소를 당한 피고 측의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고, 중간에 모든 재판을 기록할 원숭이들의 자리도 놓여있습니다. 이것으로 재판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어서 까마귀와 부엉이가 등장하여 까마귀는 원고의 자리에 부엉이는 원고 변호사의 자리에 나란히 앉고 여우는 피고의 자리에 승냥이는 피고 변호사 자리에 앉았습니다. 사슴 재판장이 뿔을 곧게 세우고 나오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함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동물들의 눈은 호기심 가득 빛이 났고 웅성웅성 서로 귓속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그 동물들 사이에서 까비만이 조용히 까마귀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까마귀는 무척 긴장하고 있었지만 침착하기 위해서 헛기침을 가볍게 두 번 하였습니다. 여우는 다소 자신 있는 표정으로 반대편의 까마귀를 힐긋 쳐다보았습니다. 이윽고 사슴 재판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원고 측 진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부엉이가 안경 아래로 잠시 서류들을 훑어보더니 부드럽지만 강한 말투로 가지고 온 서류를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습니다.
“재판장님, 지난 9월 15일 까마귀는 까마귀 마을 잔치에 쓸 고깃덩어리를 물고 가다가 잠시 나무에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때 고기가 탐이 난 피고 여우는 까마귀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였고 계속 아부로 까마귀를 속였습니다. 그 바람에 까마귀는 물고 있던 고깃덩어리를 떨어뜨렸습니다. 여우는 떨어진 고기를 물고 가면서 까마귀를 조롱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해 까마귀는 마을의 잔치를 망쳤다는 생각과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여우는 까마귀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고기에 대한 피해보상을 해야 합니다”
모두들 갸우뚱하며 부엉이 변호사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여우가 꾀가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죄가 될 수 있다니 어리둥절하는 눈치였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처지도 모르고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다 고기를 빼앗긴 까마귀를 어리석다고 놀리기까지 했는데, 사건이 어찌 돌아가는지 다시 또 속닥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습니다.
“그럼 피고 측 말씀하세요.”
피고 측 변호사인 승냥이가 일어섰습니다. 승냥이의 눈빛은 날카롭고 또 차가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양복이 아주 잘 어울려서 똑똑해 보였습니다. 모두들 승냥이 변호사의 멋진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과연 어떤 말이 나올까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재판장님. 여우는 그날 우연히 까마귀를 보았고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격려하는 마음으로 까마귀를 칭찬한 것입니다. 칭찬했다고 해서 벌을 받아야 한다면 동물들 사이에 서로 칭찬하는 아름다운 풍습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또한 땅에 버려진 고기를 주워 간 것도 죄가 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양쪽 주장이 만만치 않았지만 여우가 까마귀를 칭찬했다니 모두들 안 믿는 눈치였습니다. 꽤 많은 여우에게 한 두 번 당해 보지 않은 동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까마귀는 분한 표정으로 여우를 쏘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변호사 부엉이는 당황하지 않았고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침착하게 이것저것 서류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승냥이 변호사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두더지님을 증인으로 세우겠습니다.”
동물들 사이에 있던 두더지가 길이 잘 보이지 않는지 더듬거리면서 앞으로 나왔습니다. 다리가 짧아서 원숭이경찰관이 도와주어 겨우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앞다리를 세우고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합니다.”
두더지의 선서가 끝나자 승냥이 변호사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두더지 앞에 얼굴을 바싹 대며 물었습니다.
“두더지님, 사건이 있던 날 까마귀와 여우를 보았습니까? 그 날 보았던 것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눈이 어두워서 까마귀와 여우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근처에서 굴을 파고 있던 중이라 둘의 말소리는 또렷하게 잘 들렸습니다.”
두더지의 목소리가 너무나 작아서 사슴 재판장은 조금 크게 말할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래도 두더지는 너무 긴장을 했는지 더듬거리며 우물쭈물하기도 하여서 모든 동물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만 했습니다. 승냥이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두더지에게 다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우가 까마귀에게 무어라고 하던가요?”
“까마귀가 새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하였고 가장 큰 새라고도 했으며 까마귀야 말로 응당 왕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목소리만 곱다면 틀림없이 왕이 될 거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두더지는 기억을 더듬는 표정을 짓더니 조금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말씀은 여우가 까마귀에게 어떤 욕을 하거나 고기를 뺏기 위해서 으르렁거리지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승냥이 변호사는 차분하게 다시 물었습니다.
“네? 아, 네네”
두더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자 승냥이 변호사는
“재판장님, 들으신 대로 여우는 까마귀를 속이거나 헤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음을 말씀드립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두더지 증인이 다시 더듬더듬 자리로 들어가는 동안, 이번에는 부엉이 변호사가 일어났습니다. 부엉이 변호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참새를 증인으로 신청하였습니다. 참새는 경망스럽게 포르르 날아와서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참새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증인석에서도 이리저리 둘러보고 날개를 털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부엉이 변호사는 참새 증인이 침착해지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참새님은 새들 중에서 가장 부지런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번 사건이 일어날 때 어디에 계셨나요?”
그러자 참새는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주 의젓한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까마귀가 앉아있던 소나무 위쪽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여우와 까마귀가 이야기하는 것을 모두 들었나요?”
참새는 마치 깊은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잠시 갸우뚱하다가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고기를 물고 있어서 말을 하지 못했고 여우 혼자만 말을 했어요. 까마귀는 나중에 깍 깍 몇 마디 했을 뿐이고요.”
부엉이 변호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참새의 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다시 물었습니다.
“왜 까마귀가 까악 까악 말을 하게 됐나요?”
이런 질문이 나오자 원고 자리에 앉아있던 까마귀는 그만 부끄러워 얼굴을 푹 숙였습니다. 분명히 무슨 대답이 나올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까비도 그런 까마귀의 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부엉이 변호사를 믿고 있기 때문에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새가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여우가 고운 목소리만 있다면 왕이 될 수 있다고 하였기 때문에 자기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그랬을 겁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재판을 구경하던 모든 동물들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앵무새는 허리가 뒤로 젖혀질 만큼 온몸을 흔들면서 웃었고 눈물까지 찔끔찔끔 흘리면서 웃는 동물도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고와야 왕이 된다는 거짓말도 우스웠지만 까마귀가 왕이 되겠다고 까악 까악 하며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우스웠던 것입니다. 염소할아버지는 쯧쯧 혀를 차기도 하였습니다. 까마귀는 그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윽고 사슴 재판장이 무서운 소리를 냈습니다.
“모두 조용히 하세요. 조용히!”
재판장의 엄한 목소리를 듣고 조용해지자 다시 부엉이 변호사가 참새 증인에게 물었습니다.
“까마귀가 소리를 냈을 때 까마귀가 물고 있던 고기는 어떻게 되었나요?”
“아, 그거야 당연히 나무 아래로 떨어졌고 그곳에 있던 여우가 재빠르게 물고 가버렸지요.”
참새는 피고 측에 앉아있는 여우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참새는 자신의 말에 모두들 웃자 신이 났는지 증인석에서 종종거리며 뛰기도 했습니다. 여우는 방청석에서 까마귀를 조롱하며 모두 웃고 난 뒤라 자기도 웃음 띤 얼굴로 참새를 바라보았습니다. 부엉이 변호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림 없이 다시 참새에게 물었습니다.
“여우가 고기를 물고 가기 전에 어떤 말을 하지 않았던가요?”
참새는 몸을 부르르 한 번 떨더니 다시 새침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물론 말을 했고 말고요. 까마귀를 보며 ‘그 좋은 자격에다 머리마저 좋았다면 이상적인 왕이 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들었습니다.”
부엉이 변호사는 빠르게 말을 받아서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은 그 고기가 까마귀가 떨어뜨렸다는 것을 알고도 여우가 가져갔다는 뜻이며 고기를 빼앗기 위해 까마귀에게 일부러 칭찬을 해주는 척했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이상입니다.”
부엉이 변호사가 정중하게 말을 마치자 참새 증인은 포르르 날아서 바쁘다는 듯이 떡갈나무 아래를 벗어났습니다. 부엉이 변호사의 말을 듣자 이번에는 모두들 생각하는 눈치였습니다. 사슴 재판장도 무엇인가 쓰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피고 측은 말씀하세요.”
사슴 재판장의 말이 떨어지자. 승냥이 변호사 역시 차분하게 일어나서 앞으로 나섰습니다.
“재판장님, 까마귀에 대해 솔직하게 왕이 될 자격은 있지만 머리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고 해서 여우가 일부러 고기를 빼앗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더구나 여우는 끝까지 칭찬만을 하였으며 마지막에도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을 한 것뿐입니다. 여우는 죄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승냥이 변호사는 간단하고 힘차게 말했지만 무엇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여우가 자기는 단지 칭찬만 했을 뿐이라고 소리쳤고 까마귀는 거짓말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사슴 재판장이 눈을 한 번 크게 뜨자 둘 다 조용해졌습니다.
“원고 측 더 할 말은 없습니까?”
부엉이 변호사가 다시 일어서서 재판장 앞으로 나섰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왕이 될 수 있는 동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가 왕이 될 수 있다고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까마귀도 새들의 왕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고 용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꿈을 가지고 있을 때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고 마침내 꿈을 이룰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여우에게 속임을 당하고 난 뒤에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우울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우가 까마귀에게 큰 상처를 준 것입니다.”
여기까지 부엉이 변호사가 이야기를 하자 동물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까마귀도 가만히 고개를 들어 부엉이 변호사의 말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부엉이 변호사는 더욱 자신감이 넘치고 분명한 목소리로 이어서 말을 하였습니다.
“여우는 까마귀의 마음을 이용하여 왕이 되기 위해서는 목소리가 고와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속여 고기를 떨어뜨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고기가 까마귀의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물고 가버리면서 머리가 나쁘다고 조롱까지 하는 나쁜 죄를 저질렀습니다. 재판장님, 이런 여우에게 벌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말을 마치자 여러 동물들은 수런수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과연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모두 궁금한 표정들이었습니다. 까마귀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양측 주장을 모두 들었습니다. 오늘 재판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판결은 2주 후에 내리겠습니다.”
사슴 재판장은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2주 동안 재판장도 깊이 생각하고 더 조사할 것이 있는지 다른 판사들과 의견을 나누어야 공정한 판결이 날 테니까요.
동물들은 하나 둘 까마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동안 어리석은 까마귀라고 놀린 것이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까마귀는 많은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격려를 받았지만 여우는 아무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했습니다. 여우와 승냥이 변호사가 함께 떡갈나무 숲을 벗어날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그때 까비가 까마귀의 옆으로 날아왔습니다.
부엉이 변호사는 다정한 형처럼 까마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습니다.
“수고했어. 까마귀야, 넌 최선을 다한 거야. 실수로 고기를 빼앗겼지만 누구나 실수는 한단다. 그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 진짜 지혜란다. 참, 왕은 여러 새들을 도와주고 이끌어줘야 하니까 좀 더 똑똑하고 강해져야겠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우리 까마귀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겠는걸. 하하하.”
까마귀의 까만 볼이 빨개졌습니다. 까마귀가 부엉이 변호사를 바라보며 자신 있는 말투로 이야기하였습니다.
“부엉이 변호사님, 전 이제 왕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전 부엉이 변호사님처럼 훌륭한 변호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어렵고 억울한 동물들을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뭐? 꿈이 바뀌었다는 말이야? 하하하 까마귀 변호사 정말 잘 어울리겠는걸.”
까비가 까마귀를 보며 크게 웃어주었습니다. 부엉이 변호사도 웃고 주변의 동물들도 모두 웃었습니다. 떡갈나무 사이로 해님이 살짝 숨어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모두는 즐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과연 2주 후의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