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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Dec 07. 2024

11월 어느 날

 


나는


11월

기울어진 강

가장 깊은 곳에 손을 넣어

너의 머리카락을 줍다가


울고 말았다

  


                            시집 <엘에게> 수록


                      


이른 시간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자꾸 기억을 달라합니다.

주머니를 뒤지며 사라진 흔적을 내놓으라 합니다.

어제는 비누가 사라지고 오늘은 양말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나는 마술을 부려 사라진 비누를 찾고 사라진 양말을 찾아서

두 손에 꼭 쥐어줍니다.

할머니는 처녀처럼 발그레 웃습니다.


점심에 미연 씨에게 김장 김치를 전해 주었습니다.

딸을 따뜻하게 재운 다는 것이 그만

다용도실 밑으로 온수가 지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룻밤 사이 김치통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그래도 참 맛있다.

친구는

꼬리가 간들간들 흔들리도록 하얗게 웃습니다.


늦은 시간 강가로 나갔습니다.

녀석들에게 꽃다발을 한 아름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선생님 사랑한다고 뻥을 쳤더군요.

아이들은 농담처럼 사랑을 하고 농담처럼 이별합니다.

아이들은 한 마리씩 우렁차게 강속으로 뛰어듭니다.

강가에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따스합니다.

삶은 덩달아 흐르고

나는 한조각 비늘처럼 아직 여기서 서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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