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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하 May 28. 2024

뻥치지 마라

하늘에서 내려온 왕자의 이름은 한웅이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한웅은 신의 아들인 역시 신이란 말이지.

그의 거짓은 한동안 먹히는 듯했어.

그러나 신을 빙자한 그의 행각은 사람 행세를 하는 곰 같은 여자로 인해서

들통이 나고 말거든


난 생각했지.

왜 곰과 호랑이가 같이 다닐까

니들도 생각해 봐

원래 곰은 곰끼리 호랑이는 호랑이끼리 놀아야 하잖아. 그렇지?

그런데 암컷 곰과 수컷 호랑이는 불쑥 그들의 숲에서 빠져나와

신인척 하는 한웅을 찾아와 막무가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거든


곰과 호랑이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실 난 이 둘의 사이가 좀 의심이 간단 말이야

가령,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보는 거야.

호랑이는 어느 날, 곰순이에게 반했겠지

그들은 뛰어넘을 수 없는 국경을 갖고 있던 거야

사실 호랑이는 유부남이었어.

호랑이는 고민했겠지... 종족을 배신하고 마누라를 배신할 만큼

곰순이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을 이룰 길이 없던 거지

그래서 그 둘은 생각다 못해 한웅을 찾은 거야. 신빈성이 가는 이론 아냐?

   

한웅은 난감했겠지

지가 신인척 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어떻게 동물을 사람 되게 하냐고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스스로 포기하라고

마늘과 쑥을 주고 동굴에서 백일을 견디라고 한 거야

   

그런데 니들도 생각해 봐

그 팔팔한 호랑이와 곰탱이 곰순이가 깜깜한 동굴에서 뭔 일을 했겠는지...

뜨개질을 했을까?

쎄쎄쎄를 했을까?

   

그런데 말이야

짐승이 마늘 먹고 쑥 먹고 껌껌한 곳에 있으면 어찌 되겠니?

갑자기 곰순이 털이 풍덩풍덩 빠지면서 호랑이 대갈빡도 훌렁훌렁 벗겨지겠지?

이들은 굳게 믿었어.

드디어 사람이 되어가는 증거라고

   

그때 한웅이 요것들이 도망갔나 죽었나 궁금해져서 동굴을 찾아왔지

그런데 두 짐승이 털이 훌러덩 벗겨진 채로 얼싸안고 그것들을 하고 있더란 말이야

한웅은 갑자기 후끈하며 외로움이 밀려왔지

   

사실, 신이 되어 인간들을 제멋대로 다스리는 것까지는 무지 좋았는데

어느 처자가 신과 동침하기를 원하겠어.

결혼하면 죽는 줄로 알고 모두 꽁무니를 빼는 통에

한웅은 그 주체 못 할 젊음을 끙끙거리고 있었던 터였거든

왜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신이 인간을 겁탈하고 그러잖아. (그게 다 그런 이유야)

   

아, 그러던 차에 그런 명장면을 봤으니

한웅의 심사는 어떻겠어.

   

한웅이 몰래 곰순이를 불렀지. 어두컴컴한 곳에서

그리고 슬슬 꼬신 거야.

내 말만 잘 들으면 넌 백일이 아니고 오십일 만에 사람 되게 해 주겠다고

   

곰탱이 곰순이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헤벌죽 웃었지. 마늘 냄새 풍풍 풍기는 이를 하얗게 드러내면서

그들이 막 일을 치르려고 하는데

호돌이가 그만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던 것이었던 거야.


수컷의 가슴을 찢어졌지.

니캉내캉 가족을 버리고 민족을 버리면서까지 사랑을 위하여 그 험한 고생 하며

여기까지 왔건만

아아 못 믿을 것이 사랑이 로다

암컷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로다

호돌이는 가슴의 털을 뽑으며 괴로워 울부짖었어

조금만 더 참으면 털이 몽땅 다 빠지고 사람이 될 것도 같은데...

곰순이 없는 인생이 무슨 소용이 있더란 말이냐 눈물을 흘렸지

그리고 마침내 호돌이는 백을 다 채우지 못하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던 거야

그날 비가 내렸다나 어쨌다나

 

그런데 그런 호랑이를 두고 셈이 흐리다느니, 인내심이 없다느니 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두고 호랑이를 경멸했냐고.. (반성합시다.)

   

어때. 그럴듯한 추론이지?

그럼 단군은 누구의 자손이냐고?

그게 아리송해. 미스터리야

혹시 호돌이 아이인지도.... 음

아무튼,

그 후 한웅의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오지를 않아

신이면 당연히 하늘나라로 돌아갔겠지만

그를 배웅했다는 기록이 나오지를 않는 걸로 봐서

그는 곰과의 그 재미에 푹 빠져서

한평생 숲 속에 살면서

곰탱이 털이 자라면 털을 밀어주고, 발톱을 깎아 주면서

나머지 여생을 보내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해.


그러나 곰순이도 달이 유난히 밝은 밤이면

마음속에 숨겨 둔 호돌이 생각에

눈물깨나 흘리며 생을 보냈을 거야


그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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