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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엘에게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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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Feb 14. 2024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집으로 오는 길에 고개가 두 개 있습니다. 

작은 고개,  큰 고개를 넘어서 

달을 달고 산을 지고 휘돌아 내려오면 

저 까만 대나무 울타리집이 내가 사는 곳입니다 

이렇게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면

별로 친하고 싶지 않은 귀신들이라도 고개를 내밀 것 같아

오늘은 동시 하나를 외우며 고개를 넘었습니다. 


*떡 장수 할머니가 고개를 넘어가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했답니다 

할머니가 광주리에서 떡을 꺼내 주는데 

기다란 가래떡을 한 가닥 꺼내 주는데 

어찌나 어찌나 기다랗고 기다란지 

하루 먹고 이틀 먹고 

한 달 먹고 두 달 먹고 

한 해 먹고 두 해 먹고 

먹어도 먹어도 너무나 기다란 떡이라서 

할머니도 늙어가고 호랑이도 늙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몇 줄은 빼먹고 외우다가 쓸쓸해집니다. 



할머니는 어째서 호랑이 옆에서 늙어간답니까 

호랑이는 어째서 그 떡 다 먹도록 할머니 곁을 떠나지 못한답니까 

할머니도 구시렁구시렁 

호랑이도 구시렁구시렁 

한 세월 고개를 넘다 보면 할머니 무덤 옆에 호랑이 무덤 

사이좋게 나란히 생기겠지요 


할멈 할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자꾸만 자꾸만 꿈속일랑 가슴속일랑  헤집으며 나타나 

떡하나 달라고 조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고개를 넘어설 때 

빗소리만 가득하여 

어디선가 타닥타닥 발소리만 들리는데

할멈 할멈 부르지도 아니하고 

떡 하나 달라고 조르지도 아니하고 

등도 보이지 않게 어둠만 불러놓고 당신이 돌아서는데 

가래떡처럼

비만 주룩주룩 내리고 있습니다 



*위기철의  「가래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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