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우는 여행

1일 차 한동리 주민

by 쵯수진

올해 겨울 나름 인생의 큰 계획을 앞두고 예행연습이 필요했다.

일찌감치 봄에 서둘러 제주 여행 계획을 잡고 여름이 되어서 떠난 제주 여행이 예행연습이다.

두 여자에 의한, 두 여자를 위한 여행!

여행지는 제주로 정하고 제주 안에서 할 일은 오직 김창열 씨의 물방울 그림을 보기 위한 계획만을 세우고 봄부터 시간이 흘러 아이의 여름 방학을 며칠 앞두고 과감히 (-요즘은 현장 학습 체험이라는 명분으로 결석하는 것을 무지 좋아하는 딸 덕에-) 공항으로 향한다.

코로나 규제가 완화되면서 제법 북적거리는 공항과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2년 만에 타보는 비행기의 꿀렁거림은 스릴이 넘친다.

내가 운전을 못 하므로 렌터카는 없다. 하지만 숙소 근처 정류장의 202번 버스와 카카오 택시 앱을 이용하면 아주 영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사전 조사는 해 놓은 상태다.

그러므로 숙소까지의 이동은 버스를 이용할 수도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여행지의 도착과 함께 고행을 택하자니 동반자 배려 차원에서 택시를 이용한다.

내 시절 제주 민박집은 ( - 스물다섯 되는 해였을까 대학 제일 친한 친구 둘과 함께 떠난 제주 여행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니 -) 아담한 한옥에 우리 할머니와 연세가 비슷하신 할머니가 계시고 할머니의 손맛으로 구색 맞지 않은 접시에 생선 반찬과 나물을 푸짐히 담아내시고 스테인리스 그릇에 밥과 국을 내주신 것이 조식 서비스였으며, 연 하늘색 타일이 발라진 욕실엔 샤워기는 고무호스가 전부였다.

내 딸 시절의 제주 민박집은 아담한 제주 고유 한옥의 형태는 그대로 살리고, 주방은 3 연동 폴딩 도어를 열고 들어가면 젊은 사장님께서 브런치 식당 메뉴인 몬테크리스토 토스트를 조식으로 서비스해 주셨다. (- 무려 5개의 메뉴를 매 아침마다 다르게 서빙해 주셨다- ) 객실은 깨끗하고 잘 정리된 침구와 빵빵하게 나오는 시스템 에어컨에 샤워실과 변기를 잘 분리해 놓은 욕실까지 딸아이가 너무 좋아할 만하다. 다만 내 시절과 이 아이의 시절 모두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우리를 맞아 주셨다는 것은 공통적인 행운이다.

숙소에 도착은 곧, 본격적인 스케줄이 시작함이다.

나의 여행은 늘 빠듯하지 않다. (-수빈이와 단 둘이 떠났던 스페인 여행을 제외하고 말이다. 패키지는 초인의 힘이 필요하더라.- ) 이 번 여행도 그날의 여행자와 여행지의 컨디션-특히 날씨- 에 따르기로 한다. 숙소의 위치 또한 그런 여행의 목적에 딱 부합한 곳으로 선택한 것이다.

(- 예약 전 숙소 사장님과의 통화에서 사장님은 한가한 위치라 오후 7시가 넘으면 근처의 식당들은 문을 닫으니 염두하라는 당부셨다.-)

사장님께 미리 들은 정보가 있기는 하나 일단 이곳이 얼마나 한가한 곳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우리 숙소에는 별채 사장님 댁 옆으로, 오르면 별채의 지붕과 나란한 높이의 아담한 언덕이 하나 있다. 일단 그 언덕에 올라 숙소의 위치와 바다의 방향, 골목의 위치가 파악이 된다. (- 여행 내내 새벽과 아침 사이의 그 어느 시간쯤 난 항상 그곳에 올라 다른 듯 같은 한동리를 한눈에 담는 것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 숙소는 정류장으로 따지면 계룡 정류장 방향과 한동초등학교 방향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동초등학교 방향의 해안 도로를 따라가면 월정리 해변과, 김녕해수욕장, 함덕해수욕장이 근처고, 계룡동 방향의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평대리 해수욕장이 근처다.

짐을 내려놓고 새하얀 침구서 두어 바퀴 뒹군 다음 조금 이른 저녁도 먹고, 동네 길도 눈에 담을 겸 평대리 해수욕장 쪽으로 걸었다.

새까만 현무암에 새파란 바닷물이 새하얀 파도로 부서지는 제주 바다가 내 왼편으론 끝이 없고, 오른편으로는 지려하는 오후 햇살을 받으며 초록의 풀들과 낮은 돌담을 지나면 듬성듬성 예쁜 카페와 아기자기한 식당들이 바다를 보며 창을 내고 있다.

얼마 걷지 않아도 맛으로 소문 나 있는 식당이 있길래 우리는 바다 보이는 창가에 나란히 앉아 음료 하나와, 제주 맥주 한 병,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각자 주문하고, 5박 6일 동안의 한동리 주민의 삶을 위해 건배했다.

해안도로 따라 잠깐의 산책을 하고 돌아보니 사장님의 말씀대로 열었던 식당들은 문을 닫았고, 무슨 이유인지 잠시 휴업 중인 가게들도 종종 있었다.

수원에서 김포를 거쳐 제주 공항에 들려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들어오는 과정이 오늘의 가장 큰 일정이므로, 식사 후 잠시의 산책 만으로도 나의 여행 동반자에게 더 이상의 요구는 무리다. 숙소마저 그녀의 취향에 딱이니 그곳에서의 쉼도 힐링인지라 완전히 해가 진 새까만 한동리 경험은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니 그녀를 위한 배려를 하고 홀로 나서 보기로 한다.

숙소 안 작은 언덕에 올라 눈으로 동네 한 바퀴를 또 훑어보고, 내 주변 1미터만 들릴 정도로 음악을 틀고, 골목을 나와 해안 도로를 따라 잠시의 산책을 하는 동안, 반경 2미터가 들리게 트로트를 즐기고 계신 어르신 한 분과, 자전거를 타고 해안 도로를 즐기는 젊은 여성 한 분을 마주친 것 제외하고는 밤의 한동리는 너무 조용했다.

5박 6일의 첫 밤!!!

이렇게 고요하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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