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결혼을 하고 수원의 첫 생활을 시작한 동네가 정자동이다.
넉넉하게 시작한 결혼이 아니다 보니 우린 정자 시장 근처 작은 상가 주택에서 신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3년 남짓 생활하면서 수빈이가 생겼고 수빈이의 이유식, 우리의 밥상은 늘 코 닿는 거리의 정자 시장이 책임져왔었다.
우리 집은 2층 자그마한 투룸이었고, 1층엔 식당이 있었다. 시장으로 향하는 길지 않은 그 골목에는 아담한 2층 양옥집도 있고, 아이들 재잘거리는 어린이집도, 퇴근 후 즐기던 호프집도 있었다. 우리는 수빈이가 돌이 되던 해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였지만, 정자 시장의 맛은 잊지 못하여 그곳을 떠난 지금까지도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다녀간다. 그러다 더 가끔 시장을 다녀가다 우리 살던 그곳은 변했으려나 하며 골목을 들르기도 한다.
커피보다는 카페를 즐기는 내게 신랑은 이왕 커피의 맛도 알며 즐기는 것이 어떻겠냐며 나를 간지럽히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정자 시장을 들려 가는 중이었고, 그냥 우리 살던 골목이 궁금해졌다. 오랜만이긴 했나 보다. 그 골목!! 우리 집 1층의 식당은 업종이 바뀌었다. 그리고 눈 돌린 그곳, 우리 앞집, 아담한 양옥집이 있던 그곳에 커피 공방이라 쓰여 있는 나무 간판이 생겼다. 반가웠다.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냥 끌림이다. 난 당겨졌고, 공방의 문도 당겨졌다.
본능적인 끌림인가 보다.
장미꽃이 만발하는 5월, 15년 전 수도 없이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걸어서 둘이 만나 셋이 되었던 그 집 앞에서 매주 나는 커피 향기를 맡았다.
낮은 철문을 열고, 유리 현관문을 당기고 들어가 하얀 공방에 앉아 반대편 내가 살던 그 집을 바라보니 느낌이 이상하다.
그때의 나나 지금의 나나 더 잘나 진 것도, 못나진 것도 없지만, 첫날 첫 수업 가는 길은 금의환향한 것 마냥 한 없이 들떴다. 결혼해서 잘 살았구나 초록 나뭇잎들이 칭찬하는 것 같았다.
주 1회 가는 수업은 늘 설렘이었다. 빨간 탐스런 장미꽃은 지고, 매미 소리가 들리고 나는 두 계절을 15년 전의 그 길 따라 맞이했다.
내가 내린 에스프레소 향을 맡고, 맛을 느끼며, 밀크 스티밍 한 거품을 얹어 카푸치노를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다 문득 우리 집 창문을 바라보면, 지금 사시는 분의 귀여운 고양이와 눈을 마주친다. 너 나 알아?? 나 거기 살았다!!! 말도 안 되는 눈 짓도 보내본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밀크 스티밍으로 벨벳 폼을 만드는 반복적인 수업이지만 늘 오는 길이 즐거웠음은 15년 전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았기 때문일 거다.
여섯 번의 수업을 하면서 도중에 필기시험도 보고, 마지막으로 실기 시험까지 치르고 며칠 전에 선생님께서 합격했다는 전화를 하셨다.
응애 울던 아기를 나보다 더 큰 아이로 키우면서, 첫 수원 살이를 시작한 그곳에서 자격증이라는 것을 받게 되니 감성적이게 된다. 자줏빛 커버 속에 한 장의 종이 증명서가 들어 있지만 오십을 넘기기 전에 중간 정산하면서 상장을 받는 기분이다.
오늘 날씨처럼 비는 그치고 또 오고를 반복하겠지만 2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버스에서 내려 익숙한 가로수 길을 걸으며 느낀 청량함과 설렘으로 또 다른 활기를 얻어간다.
정자 시장 외출 나오면 꼭 들러 커피도 한 잔 내려 보고 안부 전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고맙다.
그렇게 공방을 들르는 날이면 또 한 번 우리 집 창문을 바라보겠지?? 그곳에 누가 사는지, 그리고 그곳에 사는 분들께 늘 행복하길 기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