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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재 Dec 15. 2020

크롬캐스트와 흥선대원군

< 변화에 적응하기>


큰 딸이 독립하고 나니 방이 비고, 놀고 있던 TV가 내 차지가 되었다. 그 방에 있던 TV는 유선을 달지 않아 무용지물 상태였다. 그러다가 큰 딸이 구글 크롬캐스트를 설치하는 것을 권했다. 평소에 휴대폰의 작은 화면으로 Wavve, TVING을 보는 나를 안타깝게 생각해서 권유한 것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삶의 도전은 좋아하지만 기계를 다루는 것이나 컴퓨터 또는 스마트 폰으로 행하는 것은 서툴고 두렵다. 그렇지만 왠지 갑자기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지인이 ‘스카이라이프’를 통해 <세계테마여행>을 봤다는 것이 생각나 그리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잊어버리고 살다가 며칠 뒤 크롬캐스트가 택배 상자에 담겨왔다. 크롬캐스트를 거실의 TV처럼 셋톱박스를 설치하는 것쯤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것이었다. 유선방송은 와서 설치해주면 그것으로 끝인데 셀프로 설치를 해야 했다. 설치는 작은 딸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작은 딸도 내 과(도전은 싫어함, 익숙한 것이 더 좋음)라 이런 것을 해 달라 하기가 힘들었다. 크롬캐스트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신뢰도 없고 안 되면 어찌하냐. 하면서 투덜대며 박스를 뜯었다. 그냥 반납하고 유선을 부르자. 아니해보자 실랑이하면서 반나절을 보냈다. 


작은 딸은 설치하는 내내 큰딸을 원망했다. '언니가 필요한 것을 왜 엄마에게 하라고 하는가.' 나도 그냥 '유선을 달라'할 것을 후회했다. 큰 딸에게 ‘네가 와서 설치해주라~’ 말하기도 했다. 결국 큰딸이 작은 딸에게 ‘흥선 대원군’이냐 말했다. 본인이 ‘흥선 대원군’으로 지칭되는 것이 너무 억울한 작은 딸은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받아쳤다. 언니에게 강요받은 신문물이 아니라 본인이 주체적으로 사용할 것을 고르고 싶은 것이었다. 졸지에 ‘흥선 대원군’이 된 작은 딸은 많이 억울한지 언니의 선택에 휘둘리는 엄마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Wavve, TVING의 아이디와 비번을 몰라 큰 딸에게 물어보고, 또 연락이 안 되고 하면서 또 갈등이 이어졌다. 작은 딸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피곤해하였다. 나는 중간에서 눈치가 보여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그 사이 작은 딸이 설치를 잘해놓았다. 언니랑 옥신각신하면서 ~    


큰딸이 독립을 하며 혼자 남은 작은 딸이 나이 든, 아니 늙은 부모를 졸지에 책임을 져야 할 입장에 놓이니 힘들다고 한다.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할 일이 많고, 부모가 물어보는 것에 답 해줘야 하는, 계몽?을 전담해야 할 입장이 되니 그런 것이다. 이는 이전에 큰 딸이 담당했던 일이다. 큰 딸이 내가 질문하면 <네이버> 좀 찾아보라’고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조금 지나니 무언가 하려고 항상 노력하는 듯한 엄마를 위한 보상인지 'TV 화면'에서 영상이 잘 나오고 있었다. 지난 프로만 되는 줄 알았는데 현 실시간 영상, 뉴스도 나왔다. 작은 화면으로 보다가 큰 화면으로 보니까 시원하고 좋았다. 괜히 두 딸들 사이에 갈등만 조장한 엄마가 되었다. 

 

저녁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TV를 틀어놓고, ‘글쓰기’ 작업을 하면서 두 딸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고맙다’라는 문자를 남기려고 톡을 열었다. 내가 투덜대며 ‘크롬캐스트’를 반납하자고 보낸 문자에  <아니, 왜. 하면 되는데>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 하면 되는데 ]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정주영 회장의 <해 봤어? >만큼이나

[ 하면 되는데 ]가 가슴에 [쿵]~! ‘평생교육’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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