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재 Feb 16. 2022

보름나물과 사촌오빠

세월이 아쉬워

'보름나물 못 먹었어. 요사이는 정월 보름 챙기는 집이 얼마 없고, 현실적으로 살고 나이가 들면 귀찮은 일 안 하려고 해. 언니도 81세 들어서 이젠 제사도 모두 절에 일임했고, 오랜 세월 봉건적인 옛 생활을 했지~.'

89세 된 사촌오빠께 서두로 '보름나물 드셨냐'고 안부 인사드렸더니 톡으로 온 내용이다. 


내가 중3 때 37세로 결혼이 늦은 오빠였는데 아직도 마음은 젊어서 언니가 마음고생이 심한 듯 하나, 오빠가 눈치를 보는 것이 역력하여 민망할 정도다. 아직도 팝송을 톡으로 보내주시는 멋쟁이로 예전 대학 때 한 멋을 날려 많은 여성들 마음을 설레게 해서 유명했던 기억이 있다. 


평소 음식을 잘 못해서 명절 때는 반찬가게 솜씨를 빌리는데 정월대보름은 내게 늘 그냥 지나치는 날이다. 며칠 전 반찬가게 갔더니 대보름 나물 예고를 했길래 올해는 식구들에게 보름나물 보여주자. 거의 10가지 중 이름 모르는 나물이 더 많지만 소담스럽게  담겨 있는 것이 흐트러진 모습으로 만들기 싫을 정도였다.

  

오래간만에 보름나물을 먹었길래  인사차 날렸던 보름 나물이 오빠에게 천당 지옥, 형무소 생활자, 빈곤층, 요양병원, 중환자실에 살고 있는 사람까지 말씀하셨다.  지금 살고 있는 현재가  천당과 지옥이며 아무쪼록 가족 모두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는 말까지 그리고 종교는 자유라고 하셨다. 내가 기독교인 것을 아셔서~


아버지 형제 7남매 자녀들의 화합을 위해 애쓰는 오빠는 남은 인생 동안 사촌들을 서로 만나게 하여 돈독한 모습을 보고자 하는 게 마지막  과업이라고 한다.  이 시대에 씨족사회를 연상케 하는, 사촌들의 정을 다시 느끼게 해주고 싶은 오빠의 마음을 그냥 웃음으로 흘려버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엄마 나이와 비슷한 사촌오빠, 내 위, 아래 몇 살 차 안나는 사촌들도 가까이 지냈기에 지금 시대에는 보고 느낄 수 없는 정들이  마음속에 아직도 찐득하기 때문이다.  사촌오빠의 톡이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과 감정을 느끼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청춘 40대 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