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재 Feb 22. 2022

'왜 아빠랑 결혼했어?~'

운명이었나 봐

10여 년 전, 지인이 아이들이 ‘엄마는 왜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했냐’고 할 때 “그랬어요?” 하면서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가끔 그 남편을 보면 혼자 미소 지었다. 본인은 알까? 애들이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그러나 사람은 한 치 앞도 알지 못한다.

훗날 내 딸도 내게 같은 질문을 할 때마다 “너 낳으려고 했지!” 그 외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알면 했겠니, 모르고 했지.' 몰라야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그러나 운명이었던 것 같다.


딸들이 크면서, 남편이 “‘물 갖다 달라”, “커피 줘”, “이건 왜 난 안 줘” 등의 말을 하면, 너무 아기 같은 말을 한다고 딸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난 주일 저녁, 하루 세끼 같은 반찬으로 밥 먹기는 괴로우니 오래간만에 탕수육을 시켰다. 짜장이나 짬뽕을 시켰던 다른 때와는 달리, 국물은 마침 집에 있던 사천 백짬뽕과 신라면으로 하기로 했다. 식사 후 내가 손 씻으러 갔을 때, 남편이 같이 다 먹은 빈 그릇이나 식탁 위를 치우는데 도와주지 않고 소파로 갔는지 “아빠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라고 한마디 했다. 남자라고 결혼해서 아무것도 안 하면 “결혼하기 싫다”라고, 내 돈 벌어 “나 혼자 사는 게 낫다”라고, “벌어놓은 돈 혼자 다 쓰고 가는 게 낫다”라고. (뭐 얼마나 벌었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해라. 결혼하지 말든지. 아빠가 남자냐? 아빠는 아빠지!”


그러나 딸은 엄마의 입장에서 아빠를 이야기한 것인데 자신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한다. 


남편은 결혼 초부터 집안일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남동생은 아내 일을 도와주고, 설거지도 가끔 해서 친정 엄마 눈에 좀 거슬렸는데, 그때마다 “지 아빠 닮아서 에휴~”며 속상해하셨다. 또 딸 집에 오면 사위는 전혀 꼼짝도 안 하니 “자네는 와 꼼짝도 안 하노” 하며 또 속상해하셨다. 

시아버지께서 시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것을 남편은 본 적이 없고, 딸이 없는 시어머니께서 장사하시느라 바쁘셨어도 네 명의 아들들에게 집안일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밥 먹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자주 갖다가 넣고, 빨래도 널고 하는 장족의 발전을 해서 그럭저럭 사는데, 딸들의 눈에는 차지 않는 것이다. “엄마가 길을 잘못 들인 거야. 다 해주니까 아무것도 안 하시고.” 엄마만 계속 힘든 거지. 즉 내가 뿌린 것, 내가 거두는 거다의 뜻으로 들렸다. 


이젠 같이 늙어가면서 서로 밖에서 힘든 일 하고 오면 쉬어야 한다. 젊은 자기들도 힘들어서 전철역에 15~20분 정도 숨 고르고 온단다. 딸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본 아버지의 모습은 ‘아무것도 안 한다’는 생각이 박여있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도우기에 ‘남편이 예전보다 나아져 간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내가 그렇게 길들여졌나 보다. 어쨌든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에게 ‘엄마 도우는 집안일’을 자꾸 강요하니 내가 시킨 듯 마음이 불편하다. 미약하지만 스스로 행하는 중이라고 느껴진다. 노력하니까 봐주자. 앞으로 아빠는 내가 알아서 할게. 한편으로는 좋은 기회를 내가 어리석어 일을 버는지 모르겠다. 마음 약해서.


다시 또 태어나면 '남편과 결혼하겠냐'라고 하면 '한다'라고 한다 새로운 사람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혼자 살고 싶지는 않다. 외로울 것 같아서.


요즘 신혼부부들은 집안일의 분배 때문에 초반에 갈등이 심해서 서로 상처가 된다. 우리 딸들의 모습도 눈에 그려지지만, 지혜롭게 좀 배려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의 비자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