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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맘 Aug 28. 2020

애착 이론과 만 시간 법칙의 상관관계

                                                                                

 지난주 나는 오랜만에 버스를 타러 가면서 별이와의 시간을 문득 떠올렸다.  그동안 나는 별이와 오롯이 함께 한 지 만 6년이 지났고, 최근 조금씩 엄마로서의 세계를 살짝 벗어나 나만의 세계를 조금 넓혀갈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가장 컸다. 그것은 내가 별이를 사랑하는 것을 별이가 이제는 알게 되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나는 이것을 '애착'이라고 부르고 싶다. 


 갑자기 나는 별이와 애착을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들었는지 계산을 하고 싶어 졌다. 버스 간격이 너무 길어 다른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면서 나는 폰을 꺼내어 이래저래 계산을 해 보았다.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제외해야겠지 그리고 별이가 유치원에 가는 동안은 나와의 시간은 아니니 또 제외해야 하나 싶다가 문득 만 시간의 법칙과 애착 3년 이론과의 상관관계가 궁금해졌다.


 육아서를 보면 아이가 태어나서 3년까지의 시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전문가들이 펴낸 교양 육아서뿐 아니라 일반인 육아 멘토의 에세이에도 늘 그러했다. 더욱이 개인적으로 소심하게 품고 있는 스승이신 법륜 스님의 '엄마 수업'이란 책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나왔다. 나는 궁금했다. 왜 3년일까. 3년이라는 시간의 의미는 뭘까. 그 이유에 대하여 아마도 책에서 설명이 되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요즘 잘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대신 공상하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나는 육아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교육 관련 공부를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7년 차 내 눈에는 마냥 사랑스럽기만 한 별이의 엄마일 뿐이다. 뱃속에서 별이를 품고 세상에 나와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나는 별이와 늘 함께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상황이 닥쳐오기 전까지 아마도 그것은 계속될 것이다. 다만 아기 별이가 걱정될 때마다 아주 드물게 육아서를 읽었고 이제는 별이 덕분에 시간이 생겨 육아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책들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또한 별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 역시 주위의 다양한 엄마들과 교류하기 시작하였고 성격도 외모도 환경도 각기 다른 그들의 이야기와 행동을 통해 나는 조금 더 내 아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깊게 알지는 못하지만 얕게나마 난 책을 통한 지식과 경험을 통한 상식, 그리고 최근에 얻게 된 상상력까지 동원하며 애착 3년에 대한 비밀을 나 혼자 찾아내고 싶어 졌다. 그리고 이미 가설은 만 시간의 법칙으로 내 마음대로 정하여 버렸다. 내가 알고 있는 법칙은 사실 몇 되지 않는다. 나는 여러 가정을 하면서 이래저래 계산을 하고 맞추기 시작했다. 앞에 얘기한 바와 같이 내가 별이에게 몰입한 시간을 계산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최근 별이와 애착을 형성하여 나만의 세계를 열었다고 생각하는 시간도 함께 고려하였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결론을 얻게 되었다.                 


                              

  심각해진 코로나 상황에 지난주부터 별이는 온종일 집에서 지내고 있다. 심심할 별이를 위해 친구가 추천해 준 곤충 책 한 권과 곤충이 그려진 숨은 그림 찾기를 주문하였다. 표지만 보고 주문한 것이라 내가 생각한 숨은 그림 찾기와는 전혀 달랐지만, 다행히 별이는 곤충이 그려진 덕분에 관심을 갖고 받자마자 답 찾기에 골똘해 있었다. 한글이 서투른 별이는 그래도 열심히 한글을 읽고 열심히 그림을 찾았다. 다음에도 또 찾을 수 있도록 표시를 안 하고 싶다는 별이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대로 두었다.  대신 나에게 숫자를 기억해 달라는 별이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는데 답을 찾았다며 이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간단히 숫자만 적으면 될 것을 별이는 너무 열심히 표시를 하였다. 그림 속 세 번째 버섯이 정답이며 답을 찾은 기쁨이 여기저기에 묻어난다.


 내가 이해한 애착 3년 이론은 아이가 태어나 엄마 아빠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3년 동안 받게 되면 아이와 부모 사이에 애착을 가지게 되고 그 이후에 아이가 사회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가 태어나서 3년 동안은 아이와 함께 해 주어야 된다는 것인데, 이 말은 완전한 사랑을 주고 싶은 많은 엄마들에게 많은 고통 역시 안겨주는 말이기도 하다. 워킹맘들에게는 '양'적인 시간을 함께해주지 못하는 것이, 전업맘들에게는 '질'적인 시간을 함께해주지 못하는 것이 늘 미안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업맘이었지만 과거에 직장 생활을 호되게 겪기도 하였고 별이의 원 생활 동안 나름 파트타임으로 1년을 버텨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엄마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가 막 태어나서 얼마까지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채워주면 아이는 '보호'받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아이를 볼 때마다 행복해하는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아이는 '사랑'받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엄마의 생리적 욕구를 줄여가며 아이의 욕구를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 것이고 그럼 하루 종일 웃고 있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따금씩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미소' 짓는 것이 모든 엄마 아빠들의 보편적인 사랑 표현 방식 아닐까. 나도 그러했다. 수유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고 하루 종일 수첩에 별이의 수유와 배변 시간을 기록해가며 길고 지루한 반복의 하루하루를 거쳤다. 그렇지만 요 작은 아이가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텔레비전을 보는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땐 마주 보며 별이의 감상을 궁금해하기도 하고 하품을 하거나 용을 쓸 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많이 부족한 엄마였지만 내 아기를 사랑하기는 했었다.


 일반적으로 생후 36개월 이전까지는 '말'로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일반적인 뇌와 몸의 발달이 그러할 테고 그러니 훈육도 36개월 이후로 미루라고 권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36개월까지 엄마 아빠는 '행동'으로서 사랑을 표현해 주면 되는 것이다. 나도 생각해보면 그 맘 때 울며 떼쓰는 별이를 일부러 안아주지 않기도 하고 나의 사랑을 '행동'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많이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별이는 '말'로서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 만큼 자랐고 나는 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다. 별이가 이해를 하는지 안 하는지 나로선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긴 하지만 나 딴엔 그렇게 하고 있고 이제 별이는 엄마가 본인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안 눈치다. 


 물론 시간의 '양'과 '질'은 둘 다 중요하다. 둘 다 채워주면 완벽해지지만 동시에 그러기는 어렵다. 양이 부족하면 질을 채워주면 되는 것이고 질이 부족하면 양으로 채워주면 된다. 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도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만 시간 정도가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만 시간이란 매일 3시간씩 약 10년, 매일 10시간씩 약 3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애착도 비슷하지 않을까. 10시간씩 3년이 걸릴 수도 있고 3시간씩 10년이 걸릴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나는 별이와의 애착 형성에 속도가 많이 더딘 편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더 신중한 편이기도 한 것 같다. 아마 둘 다 나의 모습일 것이다. 


 사실 사람 사이의 '사랑'과 '신뢰'를 어떤 '지식'이나 '기술'과 비교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잘못한 시작일 지도 모르겠다. 눈에 안 보인다는 점은 같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는 계속 성장할 테고 과거의 아이는 지금의 아이와 다를 것이고, 앞으로의 아이와 또 다를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들 어른들께서는 말씀하시지 않나. 아이의 세계가 넓어질 때 부모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사랑이 아닌 본인의 영역을 침범한 '간섭'으로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다. 어릴수록 조금 더 짧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어린 아기가 아니기 때문에 아기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아이의 입장에서 최대한 고민하고 최선으로 행동하면 되는 것 아닌가. 어릴 때 부족했다면 지금 하면 되는 것이고 오늘 못했다면 내일 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앞으로도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우리 아이의 부모일 테니. 


 내가 아이의 세계를 인정하고 나의 세계를 인정하기 시작한 이 시점을 두고 지나친 오만함이나 자기만족으로 자책하지 않는 것은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과 믿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가 지금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나'의 판단이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나'로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 나와의 사랑과 믿음이 흔들릴 때, 본인 이외의 다른 어떠한 상황 속에서 별이가 힘들어한다면 난 언제든지 얼마든지 별이 옆에서 별이를 위로해 주고 나의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 난 평생 '별이의 엄마'로 살 것이며 영원한 '별이 바라기'이기 때문이다.                                               


 별이는 종이 한 장 가득 거미줄을 그렸다. 제법 잘 그렸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 보여주기도 하였다. 나는 피곤하기도 하였고 뱃속이 불편해 고개를 끄덕여 주고 다시 엎드렸다. 살짝 들여다보니 별이는 곤충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자석 관련 책인지 본인의 거미줄 그림인지 무언가에 영감을 받아 만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곤충 그림 뒤에는 클립이 테이프로 야무지게 붙어 있었고, 자석을 찾기에 나는 메모판에 붙은 자석들을 떼어 주었다. 그리고 살짝 잠이 들었다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에게 본인의 곤충들을 쉬지 않고 보여주고는 이내 놀이를 하자며 건넸다. 본론은 그거였다. 내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별이는 이것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 큰 종이에서 이렇게 작은 거미줄을 잘라낸 것을 보면 별이는 처음부터 장난감을 만들려고 한 걸까 아니면 그림을 보고 나중에 생각한 걸까. 난 여전히 별이의 머릿속이 너무너무 궁금하다.                                              

                                                                                                                    

시간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그리기 귀찮았는지 풀밭을 평소의 별이처럼 아주 거침없이 그려놓았다. 하지만 놀이 도중 잠자리가 알을 낳을 수 있도록 놀이 중간 물 웅덩이를 그리기도 하고 귀여운 장구벌레들도 함께 그려놓았다. 물 웅덩이 속 알들은 지금 막 잠자리가 낳았기 때문에 장구벌레가 되기 전이라는 세심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그려놓고 나니 벌 같다던 메뚜기에 초록색을 입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쩌면 곤충들에게는 이러한 애정과 노력을 쏟는 것인지. 그만큼 많이 좋아한단 뜻이겠지. 내가 별이에게 그러하듯이.




애착과 만 시간 법칙의 상관관계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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