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주장하는 아이가, 책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을 때면, 난 숙제를 내주곤 했다. 줄거리 요약! 읽은 책을 10줄에서 15줄 정도로 줄여서 요약을 해오라고 하면, 아이들의 얼굴엔, 영혼이 가출한 듯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줄거리 요약을 힘들어하는 건, 아이들 뿐 아니다. 내가 영화 일을 했을 때, 시나리오에 대한 줄거리를 요약해서 여기저기 문서로 보낼 일이 많았는데, 연출부에게 영화 줄거리 요약을 시켜보면, 제대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책 좀 읽었다고 하는 연출부가 해오는 요약도, 빠져 있는 내용들이 있어, 고치고 다시 만들어 보내곤 했었다.
제대로 된 요약은 생각보다 힘들다. 책이나 이야기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되었을 때에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요약을 시키면,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책의 부분 부분을 발췌해서 짜깁기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머리 속에서 정리하고, 자신의 말과 문장으로 만들어 내지를 못하는 것이다. 또, 연출부들의 경우는 이야기를 중요한 사건 위주로 나름 정리해 오긴 하지만, 요약된 줄거리가 쓰일 목적을 생각하지 않아 부족한 부분이 생기기 일수였다. 그래서 요약하는 글쓰기는 종종, 텍스트 내용의 이해 수준과,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보기위한 평가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대입 논술시험에 핵심을 요약하고 자신의 생각을 써야하는 문제가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요약을 잘하기 위해서
텍스트에 대한 완전하고 깊이 있는 이해가, 제대로 된 분석과 요약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잘 안 되어 있다면, 분석도 제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요약 자체도 체계적으로 정리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텍스트를 주의 깊게 잘 살펴보는 과정에서 줄을 치거나, 표시를 해 놓는 방법은 특히 핵심 요약이 필요할 때 매우 유용하다. 또, 텍스트가 책이라면, 책의 목차를 미리 읽고, 목차의 순서를 생각하며 읽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특히 정보 습득과 학습을 위한 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끝났다면, 다음은 요약을 위한 생각의 정리를 해야 한다.
단순히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한, 나 혼자 보기 위한 요약인지, 누군가에게 보여줄 내용의 요약글인지, 아님, 업무적인 용도로 공적 문서에 들어갈 요약인지, 보고서나 감상문 등의 리포트 제출용 요약글인지에 따라, 요약 내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상 필요한 내용 요약이나, 보고서로 제출되거나 서평을 쓰기 위한 요약이라면, 더더욱 그 목적을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 아무리 잘 간추려진 요약글이라 해도 목적에서 벗어나 있으면 부족한 요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목적이 파악되었으면, 목적에 맞는 관점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이야기라면, 사건의 시간 순서 중심인지, 인물의 성격과 심리 변화 중심인지, 내용의 체계성 또는 관계성 중심인지,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더라도 무엇에 더 중점을 두고 요약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을 위한 줄거리 요약 정도라면 이렇게 까지 자세한 설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업무용이거나 보고서 제출용이라면 관점을 정확하게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요약글의 목적과 관점이 분명해졌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텍스트에 대한 구조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일반적인 지식 전달의 텍스트라면, 책을 쓴 작가가 이미 정리한 목차대로 구조화시키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된다. 하지만, 요약글에 대한 구체적 목적과 관점이 따로 있다면, 그 목적과 관점에 맞는 기준을 세워 텍스트를 구조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요약하고자 하는 것이 이야기 텍스트라면, 구조를 정립할 때, 꼭 이야기의 시간 순서 또는 사건 순서 대로만 구조화시킬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요약을 할 때는 이야기 순서에 맞춰 요약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쓰고자 하는 목적과 관점이, 작품 속에 나타난 작가의 사상에 대한 탐구라면, 그 부분을 더욱 세밀히 살펴보며 요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가 어떤 것이든, 자신이 쓰고자 하는 요약글의 목적과 관점에 맞는, 텍스트 구조화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선, 표를 이용해 전체 구조를 시각화시켜 보는 것도 좋다. 낙서하듯이 중요한 단어를 하나둘, 적어보다가, 마인드 맵이나 순서도, 또는 목차 정렬 방법 등으로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가면, 텍스트의 구조가 훨씬 분명해진다.
지금부터는 구조화시킨 내용을 쓰는 단계다.
텍스트에 대한 구조화 작업이 끝났으면, 다음엔 단락별 핵심어나 중심 문장을 찾아 정리해야 한다. 실제로 단락별로 텍스트를 살펴보며 핵심 단어들을 추출해 내야 하는데, 구조화 작업을 할 때 떠올린 단어들이 대부분 핵심어가 된다. 그다음은 단락별 핵심어를 가지고 중심 문장들을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 단락 안에는 대부분 중심 문장이 있는데, 중심 문장이 없을 경우엔, 단락의 내용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 단락 요약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핵심어 파악은 물론, 글쓴이의 관점에 대한 파악이 정확히 이루어져 있어야, 제대로 된 요약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글쓴이가 설명한 내용들이 비슷비슷하다면, 글쓴이의 생각을 포괄적으로 묶어 줄 수 있는 상위 개념의 어휘를 사용하여 요약할 수도 있다. 이렇게 요약된 단락의 핵심 문장을 체계에 맞춰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1차 요약본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제 마무리 작업이다. 단락별로 요약한 문장들을 검토하고, 빠진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는 작업을 하면 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요약하는 글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요약하는 목적과 관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니, 요약하는 목적에 맞게 빠짐없이 내용이 들어 가 있는지 살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으며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으면, 요약문이 완성된다. 이때, 길이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단락 별 요약 내용을 조금 더 합치고 묶어, 핵심 내용을 포괄적 표현으로 정리하면, 더 짧은 요약글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어쩌면, 요약글은 다른 글들에 비해, 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제대로 해야 할 때, 정리가 잘 안돼서 헤맸던 경험 또한 누구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은 그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 그물망 같은 글일 수도 있다. 여러분도, 무언가 요약해야 하는데, 잘 정리되지 않는다면, 한 번쯤 읽어보고 참고하길 바란다. ^^;
이 글은 < 사고와 표현 글쓰기 (명지대학교 출판부/ 6인 공동저자) > 책을 참고하였습니다.
<논술 글쓰기 비결> 매거진은 1번 글부터 순서대로 읽을 것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