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논술교사하는 법 2.
내가 독서토론 논술 교사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아마도 3년 차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과 만나야 하고, 여전히 책 읽고 글쓰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책을 읽혀서 생각을 끌어내야 하는 일을 똑같이 했지만, 그때는 뭔가 일이 착착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무엇인가 내 안에 뿌듯한 느낌이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3년쯤 되니 이제 어느 정도 다양한 케이스의 문제 상황들은 한 번 정도는 모두 겪은 일들이 되었고, 그에 맞는 대처 방법 또한 어느 정도 익숙하게 처리할 줄 알았으며, 하는 수업에 대한 파악과 아이들 유형과 학부모들의 소망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이제 별 당황할 일이 많지 않은 노하우가 생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교육비 안 주시는 어머님한테 끈질기게 굴어서 교육비 받아내기도 하고, 끊을 거라고 협박하는 아이들을 달래고을래서(난 주로 을랜 다음에 달랬다) 수업 회원 유지도 잘 하고 있었고, 본사의 목표 실적에 맞추기 위해 각종 편법을 일삼으며 교사들에게 불리한 요구를 하는 팀장을 강단 있게 처리할 줄도 알게 되면서, 일에 대한 부담과 긴장이 조금은 여유와 자신감으로 바뀌어갔던 시점이 아닌가 싶다.
난 신입 때, 솔직히 내가 해야 할 일이 이렇게 잔업무가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저 책에 대한 이해도가 있고, 아이들을 다룰 줄 아는 약간의 기술만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수업을 시작한 첫날! 바로 깨졌다.
어영부영 수업을 순서대로 진행하는대도 시간은 오버되기 일수였고, 학부모에게 무슨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도 했으며, 계속 여기저기 미리 연락해야 하고 스케줄을 스스로 조정하면서, 떠드는 아이들 달래서 수업해야 하고, 가르쳐야 할 전 학년의 모든 책들(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수백 페이지의 양)을 주 단위로 계속계속 읽어 내고, 수업에 핵심과 배경지식을 적고, 공부해야 했고, 모르는 전산작업에 대해서 배워야 했으며, 베테랑 교사와의 차이를 매우기 위해 다양한 교육자료도 찾아 읽어야 했다. 내가 아무리 질문하는 것이 익숙했다 하더라도 토론을 이끌어 내는 데는 부족했고, 아무리 글쓰기를 잘 지도할 수 있다고 해도, 부족한 시간에 서너 명의 아이들을 봐준다는 것은 시간에 쫓겨 수정할 부분의 한계를 설정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아이들의 단순 실수와 거짓말을 구분하는 것, 얼마나 엄하게 해야 할지, 얼마나 재밌게 수업해야 할지 조차 기준을 정하기 힘들어 아이들과 만족스럽게 학습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 마디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헤매고 있을 때는 뭐니 뭐니 해도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자세히 정답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처음엔 다 그런 거라며 슬쩍 넘어가는 사람, 그런 노하우 같은 건 없다며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간혹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며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는 선배들도 있었고, 아이들의 특성은 이렇다며 베테랑 주부 선생님의 귀띔도 매우 유용한 경험담이 되기도 했다. 고민되는 점은 몇 날 며칠이고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다가 다양한 의견들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하나씩, 적용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아이들을 지도할 때 핵심 규칙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헤매면서 조금씩 나만의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규칙과 기준 선들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해결책에 대한 상담은 주로 사적인 자리, 사적인 공간에서 많이 이루어졌다.
처음 내가 신입교사일 때 멘토를 맡아주던 선배교사가 있었는데, 나보다 나이는 한 참 어렸지만, 씩씩하고 쾌활한 성격에 보이쉬한 모습으로 수업을 아주 잘 하던 여자 교사였다. 술을 잘 마시진 못했지만, 술자리를 좋아했고, 항상 바빴지만, 유쾌하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수업까지 잘하는... 나한테는 지점에서 가장 완벽한 멘토였다. (멘토를 정하는 첫날, 내가 그녀를 멘토로 직접 찍었었다.)
그녀가 내게 처음 했던 말은 이 말이었다.
" 힘든 일이 있을 땐 동료들하고 이야기하면서 풀어야 해요! 우리 일의 어려움은 우리밖에 모른다니까요!"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일단 신입 6개월 동안 수업에 대한 공부를 하느라 친구를 만날 기회도 많지 않았지만, 만난다 하더라도 업무에 까다로움과 어려운 점은 디테일하게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이 일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거의 매주 그녀의 친한 동료 교사모임에 끼어서 술자리를 갖고 스트레스를 풀고, 각종 문제 상황의 모험담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신입 때는 다른 곳에서 교사 경험이 있었어도, 이 곳에선 신입이라는 이유로 어머님들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던 적도 있었고, 차일피일 교육비를 밀려 주시던 어머님이 나중엔 달 수가 헛갈리셨는지, 줬다고 우겨서 교육비를 떼어 먹힌 적도 있었으며, '놀이의 즐거움'이 주제인 책에 대한 수업을 하는 날, 놀이터에 얘들 데리고 가서 놀다가 아이 한 명이 넘어져 상처를 서너 바늘 꿰매야 했던 사고 이야기 등... 그녀도 참 파란만장한 교사생활을 했었더랬다.
그녀가 팀장 발령이 나서 다른 지점으로 갈 때까지 난 그녀와 함께 했고, 힘들었던 신입시절을 그녀 덕분에 꽤나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녀가 떠 날 때쯤엔, 나도 어느새 중참이라는 위치가 되어 있었고, 신입교사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사교육 시장은 이직률이 높아 1~2년만 지나면 중참이 된다.)
1년쯤이 지나자 친한 동료 교사도 생겼다. 매우 여성스러운 스타일에 가녀린 모습으로, 평상시 목소리 자체에 애교가 넘치지만, 아이들과 수업할 때는 카리스마가 넘치던, 나보다 6개월 정도 선배지만, 서너 살 어린 여자 교사였다. 그 친구 역시 글 쓰는 게 꿈이었고, 각종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나랑 잘 통했으며, 술 좋아하고, 잘 웃는 매력 있는 친구였다. 또, 나보다 한 6개월쯤 후에 들어온 나보다 서너 살 많은, 고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교사의 멘토가 내가 되면서 우리 셋은 자연스럽게 친하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나 다른 배경과, 너무나 다른 외모, 너무나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에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해결해 나가는 데는 환상의 조합으로 활동해 갔다.
일에 특성상 매우 개인적인 업무를 하면서도 때로는 팀의 실적을 함께 맞춰야 했기 때문에 함께 팀에 대해서 의논하고 처리할 일들이 꽤 있었는데, 서로 으쌰으쌰 해서 회의를 하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가 누군가의 머리에선 나올 수 있었고, 중론을 모아 팀의 다양한 일들을 역할 분담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다들 사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춘 사람들이었기에 관리자와 교사들의 중간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관리자의 무리한 처사는 시정할 수 있게 요구했으며, 팀 실적이 필요할 때는 파이팅을 외치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앞장서서 실적을 내면서 팀 분위기만큼은 최고로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다들, 아이들과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아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수업에 대해, 우리나라 교육의 흐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밥을 함께 먹으며 신변잡기에 대한 이야기며, 미용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도 하며, 스스로 성장하고, 스스로 만들어가며,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았다.
아마도 이 일을 하면서,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나누며 함께 팀을 이끌어 갈 버팀목이 되어주고, 이 일을 계속하는 재미를 줄 수 있었던 그때!
난 참 행복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신입 때 이 곳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선배들 덕분이었고, 혼자 알아서 성장해 가야 하는 이 세계에서 함께라는 마음을 갖고 외롭지 않게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것도 선후배 동료들 덕분이었다. 아마도 따뜻한 선후배 동료들이 없었다면, 내가 아무리 이 일에 딱 맞는 적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고,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알고 있는 노하우며 경험을 후배 교사들에게 모두 전수하고자 노력했고,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데 적극 참여했었다.
간혹, 다른 사람들이 물을 때가 있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신입교사 교육에 그렇게 관심을 갖고 시간을 할애하고, 도움을 못줘서 안달하냐고.... 또, 자신이 힘들게 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와, 치열하게 공부해서 알게 된 것들을 그렇게 쉽게 공개하고 알려줘도 되는 거냐고?
난 그럴 때면 항상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신입교사들을 빨리 적응시키고, 훌륭한 교사로 키우는데 관심을 갖는 건 내가 편하기 위해서다. 신입교사들이 제 몫을 하게 되면 그만큼 실적에 대한 내 부담은 줄어들고, 팀은 잘 돌아갈 것이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면 될 테니까... 결국 그것은 나를 위한 일이다"라고 말이다.
이것은 내가 40여 년을 살면서 최근에 느낀 인생의 비밀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으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 몇 단계를 거치든, 그 영향은 반드시 나한테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내 주변의 가족, 친구, 동료, 이웃들이 함께 나누고, 함께 공감하며, 함께 발전해야 한다.
잘 생각해 보라! 자신 주변의 누군가가 불행할 때, 당신은 진정 행복할 자신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