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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Sep 28. 2016

인도, 그곳은 선물이었다

[다시 가게 된 이야기]


헬로뚝뚝마담뚝뚝!”
딱시?? 딱시!!”
   
  역사 밖으로 나오자마자 수 십 명이 달라붙어 호객행위를 시작한다. 바쁘게 양손 가득 짐을 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에게 열심히 달려드는 릭샤꾼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태양, 마치 옷을 하나 걸치는 듯 한 높은 습도, 그리고 그 틈에서 구걸하는 사람들까지. 
     
‘아, 돌아왔구나! 내가 그리워했던 그곳, 여기가 인도다!’
 

© 2014. HNJ all rights reserved.



  5년 동안 애인을 두고 온 듯 그리워만 하던 인도 땅을 다시 밟았다. 이번엔 친구가 아닌 동생과 함께였다. 내가 이곳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어 동생을 데려왔다. 물론 약간의 강제성과 거래가 있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데려와 보여주고 싶은 나라였다. 
     
  2009년 6월에 처음 인도를 방문했다. 봉사활동을 하러 갔지만 내가 기여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왔다. 인도는 나에게 첫 배낭여행지였다. 럭셔리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곳에서 트랜디한 배낭을 메고 자랑용 사진을 찍는 그런 배낭여행이 아니었다. 50리터짜리 등산용 배낭을 메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걷다가 신발이 끊어질 정도로 환경이 열악한 진짜 배낭여행을 하는 곳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 했다. 개발도상국 여행이 처음이었던 나는 그곳의 풍경이나 생활수준을 가늠할 수 없었다. 봉사활동만 하다 갈 생각이었기에 이동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캐리어를 끌고 갔다. 하지만 내 캐리어는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 이미 보기 좋게 다 찢어져 버렸다. 인도에 간다고 새로 사 신은 샌들도 도착한지 한 시간 만에 끊어졌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며 창밖으로 보이던 인도의 풍경은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처음 본 인도의 모습에 아직도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간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책과 사진에서만 보던 풍경이 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슬럼가에서 교육봉사를 했다. 약 2주간 어린아이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우리가 ‘학교’라고 불렀던 그곳은 쓰러져가는 오두막이었다. 아이들은 비가 내리면 물이 새고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는 그곳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다. 우리를 ‘언클’, ‘언티’라고 부르며 졸졸 따르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어느 정도 생활이 되는 아이들은 중간에 학교를 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여기에 보내주는 부모를 두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축복받은 것이었다. 많은 또래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살아가는 시간에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 2009. HNJ all rights reserved.


  이곳에선 모든 것이 감사해진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마셨던 깨끗한 물, 끊기지 않는 전기, 깔끔한 방, 물이 새지 않고 꼭 닫히는 창문 등이 여기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면서 감사할 거리로 변하게 된다. 구걸하는 아이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릭샤꾼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걸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아픈 곳 없이 건강한 몸, 튼튼한 팔과 다리,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병원에도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인도는 정말 덥고 습하고 더럽다. 모순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도 자유롭고 행복한 곳이다. 내가 인도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두 번의 인도 방문 모두 가장 덥고 습한 7월이었다. 처음엔 타지 않으려고 선크림도 바르고 약간의 화장도 했다. 그리고 나는 시력이 좋지 않아 렌즈도 껴야 했다. 하지만 10분도 되지 않아 내 선택이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열기와 습도가 내 얼굴에 발린 모든 것을 녹여버렸다. 그것이 눈으로 흘러들어가 눈도 따가웠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 아니, 바를 수 없었다. 씻고 나오는 순간 이미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니 아침에 준비한다고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었고, 화장이 지워졌는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렌즈 대신 안경을 쓰고 다녔다. 누가 어떻게 보든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니 그렇게 자유롭고 편할 수가 없었다.
  인도에 가면 보통 현지에서 옷을 사 입는다. 많은 사람들이 배낭여행을 하면 그 기분을 내고자 코끼리 무늬의 펄럭이는 알라딘 바지를 사 입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도 있지만, 사실은 워낙 지저분하기 때문에 막 입을 옷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에서 입고 간 청바지를 그대로 입고 돌아다니면 덥기도 하고 아무 데나 편하게 앉지도 못한다.
  나도 처음엔 인도인의 위생관념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코끼리 바지를 사서 입고 마음을 비우니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중엔 현지인들보다 먼저 기차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내 마음가짐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달라진다는 아주 큰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엔 한국 돌아갈 날만 세면서 기다렸는데, 적응을 하고 나니 모든 것이 너무 편했다. 평소에 신경 써야 했던 것들에서 해방된 느낌을 만끽하다 보니 이렇게 계속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서울 것, 불편할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을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너무 편해서 그랬을까. 길거리 음식을 신나게 먹고 다녀서인지 어느 날부터 시작된 장염은 나을 생각을 안 했다. 3일 밤낮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린 결과 탈진할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귀국을 하기로 결정했다.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일찍 집에 간다는 사실에 신이 나기도 했지만 급하게 마무리 짓게 된 마지막이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한국에 오니 마냥 좋았다. 아빠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차를 타고 가는데 손에 뭐가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내식이 몸에 안 맞았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집에서 알레르기 약을 먹고 자고 나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더 심해졌고 이 정체 모를 피부병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한 여름에 긴팔을 입고 다니며 일주일간 병원에서 주사를 두 방씩 맞아야 했다. 일주일이 지나니 겨우 가라앉기 시작했다. 고작 2주 다녀오면서 몇 달 다녀온 사람처럼 아프고 고생했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인도는 나에게 ‘절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게 3년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나는 또 다른 경험들을 했고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다양한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나 또한 이색적인 경험을 쌓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인도의 그 뜨거운 공기가 그리웠다. 클락션 소리가 끊기지 않는 도로 위의 질서 없는 차들, 먼지로 뒤덮인 하늘과 숨 막히는 공기가 생생하게 생각이 났다.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했다.

인도 가고 싶다!”
   
 나도 모르게 외쳤고 정말 간절히 가고 싶어 했다. 꼭 다시 가고 싶었다. 이번엔 조금 오래, 더 많은 곳을 보고 싶었다. 전에 갔을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내가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해 받아들이지 못 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어떻게든 풀고 싶었다. 
 나는 끊임없이 ‘인도 가고 싶어’를 말하고 다녔다. 친구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저는 인도에 꼭 다시 가고 싶어요. 처음엔 제대로 못 즐겼는데 이번엔 꼭 제대로 느끼고 올 거예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한 2년을 계속해서 말하고 다니니 친구들이 “얘 이러다가 진짜 가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 2009. HNJ all rights reserved.



 2014년 6월 21일, 나는 그렇게 바라던 인도에 가장 든든한 보디가드인 동생과 동행했다. 내 인생에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주고 큰 깨달음을 준 인도. 이 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동생에게도 선물해줄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약 4주간 8개 도시를 돌며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인도를 보았다. 보면 볼수록 새로운 곳, 까면 깔수록 다른 매력이 나오는 양파 같은 나라. 모든 것이 불편하지만 편한 곳, 혼란스럽지만 그들만의 규칙이 숨어있는 곳, 무례해 보여도 정이 넘치는 그런 곳이 바로 인도이다. 
 항상 마음속에서 그리워하는 곳. 아련하게 자꾸만 떠오르는 곳. 사람들이 나에게 왜 그렇게 인도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달라서’ 좋다고 한다. 그 다름 앞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자유로워질 수 있어서 좋다. 그걸 받아들이는 나 자신의 변화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좋다. 

 다음에 가면 꼭 요가를 배워보고 싶다. 그리고 그다음에도 매번 갈 때마다 체류 기간을 늘리고 새로운 경험을 해볼 것이다. 이번엔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에 가서 봄, 가을, 겨울의 인도는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다. 
 또다시 새로운 음식을 먹고 탈이 나더라도, 정체 모를 벌레에 물려 온몸이 징그럽게 부어오르더라도, 나는 기회가 닿으면 계속해서 갈 것이다. 인도는 나에게 항상 새로운 깨달음을 줄 것이며, 잊고 지내던 자유와 감사함을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 인생에 선물 같은 시간이었고, 특히나 나와 동생이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 둘에겐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둘의 청춘에 진한 추억을 남길 수 있었기에 더욱 그립고 지금도 마음속에 그리는 인도이다. 처음엔 힘들고 적응도 안 된 곳이었지만,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들이 내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이었다. 내가 그때 인도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었을 거다. 그 한 번의 경험을 발판으로 더 성장할 수 있었고, 더 넓은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겐  아름다운 곳, 인도. 그곳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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