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까 말까 할 땐 사지 말라’는 인생 교훈은 우리의 경제 습관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지만 적어도 굿즈에 대해서는 통하지 않는 진리다. 왜냐하면 한 번 출시했던 굿즈는 웬만하면 다시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갖고 싶어서 사고자 하면 중고를 웃돈을 얹어야 겨우 살 수 있거나 중고로도 매물이 안 나와서 아예 살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굿즈 구매에 대한 진리를 찐팬이 되고서 제대로 깨달았다. 내가 팬이 되기 전에 팔았던 굿즈는 공식에서는 더 이상 팔지 않고, 구매를 고민하다가 결국 사지 않았던 굿즈는 중고 가격이 3배 올랐다. 내가 알기로 옆 동네 밴드의 LP는 한정 판매를 했는데 현재 시세가 원가의 10배고, 당장 데이식스의 데뷔 앨범도 어느 음반 가게에서도 구할 수 없고 중고 어플에 올라오는 매물은 1초 만에 팔린다. 그래서 괜찮은 굿즈가 일단 눈에 들어오면 살까 말까 하는 고민은 정말 신중하게 하게 된다.
지금 가장 아끼는 굿즈는 데이식스 굿즈 중에는 통통한 쁘띠멀즈랑 일본에서 사온 굿즈다. 쁘띠멀즈는 데이식스 멤버들을 캐릭터로 형상화한 캐릭터 ‘데니멀즈’의 아기 버전으로, 가장 처음 샀던 데이식스 굿즈였다. 굿즈가 아직 하나도 없었고 소유욕도 없던 시절의 어느 날, 홍대 위드뮤에 우연히 방문해서 신세계를 발견했던 경험이 아직 생생하다. 굿즈는커녕 앨범도 소유욕이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위드뮤에 가니까 쁘띠멀즈가 있었다. 구매하면 핀 뱃지도 덤으로 준다고 하고, 당시에 밴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때이기도 해서 멤버들한테 선물도 할 겸 쁘띠멀즈 각 1마리씩 샀다. 놀랍게도 각 악기 포지션 별로 뽑게 되어서 나는 방이를 갖게 되었는데 나중에 최애인 케도 한 마리 더 샀다. 첫 굿즈라 아직도 꽤 애착이 있다.
두 번째로 아끼는 굿즈는 'FOREVER YOUNG' 투어 일본 공연 때 가서 사 온 굿즈들이다. 그때 샀던 굿즈들이 케 키링, 타올 슬로건, 티셔츠, 그리고 밴드 멤버들에게 줄 랜덤 사진엽서. 해외 투어 굿즈라 다시 살 수 없기도 하고, 퀄리티가 꽤 괜찮은 굿즈들이라 더 아끼는 마음이 든다.
스키즈 굿즈 중에서는 'Case 143' 당시 나왔던 '하퉁(Heart Tung)'을 가장 좋아한다. 하퉁은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했던 하트 모양의 괴물인데 너무 귀엽다. Case 143이 사랑에 빠진 사건을 다룬 노래인데 여기에는 하퉁이가 와르르 등장하는 장면들이 많고, 그때마다 너무 귀엽다고 생각했다. 사실 처음 굿즈 나왔을 때 하퉁이를 사지 않았다가 나중에 볼 때마다 아쉬운 생각이 들어서 중고거래로 구매했는데 다행히 거래자 분이 원가로 판매해 주셨다. 가끔 가방에 키링 달고 가면 다들 귀엽다고 하더라. 지금은 중고로도 안 나오는 굿즈다.
굿즈를 사는 게 아깝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전엔 아깝다는 마음과 아깝지 않다는 마음이 7대 3 정도였을텐데 지금은 마음이 좀 달라져서 한 4대6 정도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스스로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애초에 안 쓸 물건은 사지 않기도 하고, 굿즈를 사면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관련된 물건을 보고 만질 수 있어서 물건을 볼 때마다 그들이, 그들과 함께한 어떤 공연이, 어떤 시간이, 추억이 생각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어떤 물건을 볼 때 떠오르는 것, 이게 진짜 내가 좋아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굿즈는, 살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나가기 전에 고민 말고 사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