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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JYP 소나무

by 영다정

드라마를 보면 어느 날 주인공의 눈앞에 오래 전 첫 사랑, 아니 그 사람과 닮은 그 사람을 본 순간 주인공은 그 닮은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꼭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만의 일은 아니고 현실에서도 예를 들어 내가 좋아했던 사람처럼 안경을 썼다거나, 안경을 쓴 모습에 반한다거나, 뭐 그런 사건. 운명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보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취향이라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옛 연인을 통해서는 아니고 내 최애들을 통해서.


케이팝 고인물 치고 나는 아이돌 입덕이 늦었다. 사실 3세대 이후로는 아는 아이돌이 별로 없기도 해서 얼굴을 잘은 모르는 경우도 꽤 많았다. 오직 2세대 아이돌 몇 그룹과 3세대 몇 그룹, 그 중에서도 예능을 통해 얼굴을 알린 경우만 친숙했다. 그런 나의 취향이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고 일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표본이 어느 정도 생기고 난 후였다. 그러니까 꽤 최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각 엔터사 별로 선호하는 얼굴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 JYP는 닮은꼴 동물상으로 외모가 분류되곤 한다. 예를 들어 토끼상에 원더걸스 선예, 미쓰에이 수지, 트와이스 나연, 있지 유나가 속한다. 강아지상, 고양이상, 늑대상 이런 식으로 묶이는 아티스트들이 있는데, 단순히 동물을 닮았다기 보다 그 동물을 닮은 누군가와 얼굴 느낌이 비슷해서 취향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내 취향을 깨닫게 된 출발점은 데이식스 영케이이다. 데이식스를 좋아한 지는 2016년부터지만 그때는 음악을 좋아했고 진짜 본격적으로 좋아한 건 2018년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뮤직비디오. 특히 그때의 베레모 영케이를 보고 ‘어, 잘생겼네’라고 처음 생각했다. 맹세할 수 있다. 그 전엔 진짜로 음악만 좋아했다.


잘생김에 대해 처음 인지를 하고 난 다음 또 한 번 눈길을 끌었던 영상은 2020년 유닛 활동 때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송에서 했던 ‘있잖아’ 무대였다. 그 무대의 착장이 아직 기억나는데, 흰 스웨터와 가디건을 입어서 부드러운 인상을 주면서 원래도 180.2cm의 큰 키이지만 평소보다 덩치가 좀더 있어 보였고, 빨간 기타스트랩으로 기타를 메고 있었다. 머리는 약간 갈색, 앞머리 양쪽 반반 가르마. 그런 착장을 한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대방을 향해 고백하는 노래를 부르다니. 그야말로 뽀얀 털을 가진 의젓한 고양이 같아 보였다고 할까.


그렇게 데이식스 영케이까지 내 마음을 크게 차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 스트레이 키즈(스키즈)가 다가왔다. 스키즈는 4세대 아이돌이라서 한창 3세대 케이팝 듣던 때에서 벗어나 노래만 멜론 유사곡 랜덤 재생으로 어느 정도는 접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어떤 노래에 꽂히게 되는데, 스키즈의 'My Universe'라는 곡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느낌의 잔잔한 멜로디가 마음에 들었다. 며칠 동안 가수 이름은 신경 안 쓰고 듣다가 스키즈의 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조금 멈칫했다. 전에 들었던 다른 음악은 처음 서바이벌 방송을 통해 음원으로 나왔던 ‘Hellevator’였는데, 당시 내가 좋아한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이 노래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스키즈를 내 마음에 들일 생각이 없었는데, 노래가 좋아져 버린 이상 이미 마음 속에 공간이 생긴 셈이다.


그렇게 내 맘에 드는 곡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 얼마 후에 스키즈가 전에 찍은 ‘사쿠란보 챌린지’ 영상을 보게 됐는데 갑자기 여기서 귀요미를 발견하게 된다. 인상은 날카로운데도 뽀얗고 말랑해 보이는데, 또 쑥스러워 하면서 열심히 하던 이 친구의 정체는 현진이었다. 잘생기고 귀여운 존재가 열심히 챌린지를 하는 영상은 이상하게도 머릿속에 며칠 동안 맴돌았다. 정말 슬프게도 그 뒤로 모종의 이유로 입덕 부정기를 거치기도 했다. 하, 이거 마음 복잡하지만 조금 더 알아가 보기로 하면서 스트레이 키즈를 들여다보다가 또 다른 멤버가 다시 내 마음에 들어왔다. 서바이벌 예능을 즐겨보는 사람으로서 전작들인 ‘퀸덤’의 후속작 중 하나인 ‘킹덤’을 어쩌다 보기 시작했는데, ‘한’이라는 멤버가 눈에 들어왔다. 외모가 어쩐지 눈길이 가고 랩, 노래, 작사/작곡, 프로듀싱 다 잘하고 춤도 잘 췄다. 알고 보니 한이는 유명한 영케이 닮은 꼴이었다. 영케이 닮은 사람만 좋아하나 싶었지만 한이는 뭔가 좀더 귀여운 타입이고, 내 스키즈 첫 인상 최애는 현진이었단 말이지. 심지어 둘 다 닮은 꼴 동물이 고양이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약간 날카로운 인상인 듯하면서 귀여운 사람을 좋아하나 싶었고 마음에 스키즈 몫의 공간을 확장했다.


나의 취향 발견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엑디즈)가 데뷔하고 계속되었다. 이미 데이식스(4명)에 스키즈(8명)까지 내 마음에 방 12칸 만들어 놨는데 더 늘리는 것쯤 쉬웠다. 엑디즈의 경우 데뷔 초반에 마음 확장이 좀더 빠르게 진행되어 음악도, 사람도 빠르게 마음에 들였다. 특히 내 눈에 들어온 건 ‘정수’라는 멤버였다. 고양이상에 들어맞았던 그의 외모는 첫눈에 내 마음에 박혀버렸다. 고양이인데 뽀얗고 안 웃을 땐 날카로운데 웃을 땐 세상 말랑한 그는 심지어 키 180cm인 문짝만 한 고양이였다. 음색도 좋고 노래도 잘하고 못하는 게 없는 이 고양이는, 이제 내 제왑돌 취향 데이터베이스를 제대로 완성해 주었다.


이제 정리할 수 있다. 나는 JYP 고양이상 중에 날카로운데 귀여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완전 소나무 취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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