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캐롤라이나 게스토니아 이야기 #6
지구반대편에 사는 두사람이 결혼하다
나는 바이오테크 회사에서 일한다. 그리고 틈틈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 찍고 영상 만드는 일을 하기도 한다.
내 남편은 미국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리서치를 하는 교수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만난거야?"
만남과, 연애 그리고 결혼까지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공통점은 우리 두사람 모두 미술을 좋아한다는 것. 나는 어릴적부터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남편은 공대교수이지만 미술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의 취향은 그의 어머니(내 시어머니) 에게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시어머니는 수채화 아티스트
내 시어머니는 수채화 아티스트다. 수채화 외에 조각품도 만들고, 유화, 엣칭 등 다양한 작업들을 하지만, 가장 주된 전공은 수채화이다. 평생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고, 판매했으며 커뮤니티와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작업모습을 보고 자란 내 남편은 공대로 진학하고 교수가 되었음에도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늘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내 작품들을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발판이 되었다.
내 시부모님에 대해 설명하자면, 내 시아버지는 평생을 자신의 아내를 위해 헌신하며 살았다.
소방관이었던 내 시아버지는 예술이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아내의 예술을 언제나 지지했다. 밤새도록 작업하고,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자식들을 돌보지 못해도 시아버지는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감당했다. 그리고 두 아들을 모아놓고 아내의 작업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상하게 했다.
내 남편에게 사랑은 그 두분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직업예술가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 남편은 내 예술을 지지하고 사랑해준다.
그래서 나는 2024년 여름막바지의 갑작스러운 미국 방문이 가슴 아프다.
나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남편이 태어난 도시에 숙소를 잡은 것도, 남편이 아버지와 함께 먹은 아이스크림집을 간 것도, 아버지가 일했던 빌딩을 둘러본 것도 모두 아버지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남편의 눈물을 닦아주며 남편과 어머니에게 말했다.
"I am so sorry for your lost."
그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더 슬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