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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Dec 03. 2016

여행의 시작

이 여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언젠가는 남미로 떠나겠지 생각은 했었다. 생각보다 그 ‘언젠가’가 너무 갑작스러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한 2년 전쯤만 해도 인도나 남미는 목숨을 걸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주변에서 들은 ‘위험하다’는 소리를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은 새롬이에게, 삶에 미련이 없어지면 같이 남미 여행이나 가자는 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사실 크게 갈 생각이 없었던 데다가, 여행지에 대한 환상은 인도 쪽이 더 컸기 때문에, 가게 된다 하더라도 인도를 먼저 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놈의 변덕 덕분에 인생도 참, 변덕스러워져 버렸다.

     

프라하에 1년 교환학생을 갔다. 유럽 이 곳 저곳을 누비고 여행지에서 생활한다는 설렘을 안고서. 하지만 생각보다 프라하와 나는 별로 죽이 잘 맞지 않았고, 비슷비슷한 동유럽의 분위기에도 금방 싫증이 나버렸다. 그래서 한 학기가 지나고 나는 덜컥 교환학생 기간을 단축시키고 다른 나라의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게 되었다. 유럽이 아닌 저 멀리 떨어진 곳, 멕시코에.    

 

남미만큼이나 멕시코에 대한 이미지도 참 무시무시하긴 했었다. 마약과 갱단, 총싸움, 강도 같은 것들이 판을 칠 것만 같아 도착하고 며칠은 엄청난 긴장 속에서 보냈었다. 하지만 지내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살만 했고(특히나 내가 살았던 과달라하라는 정말 안전한 편에 속한다.), 또 따뜻한 날씨와 맛있는 음식, 사람들의 매력 때문에 이 곳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여기까지 왔으니 주변 국가들을 여행할 생각이긴 했으나, 남미 여행에 조금은 자신감도 붙었다.


그래서 9월 즈음부터 천천히 남미 여행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나라들을 알아보고 날짜나 루트 같은 것을 이리저리 바꾸어가며 비교해봤다. 그때 얼마나 남아메리카 대륙에 무지했는 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중미에 속하는 멕시코를 그저 분위기와 위험도 때문에 남미로 구분 짓고 있었을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하나하나 개성이 뚜렷한 각각의 국가들을 그저 ‘남미’라는 이름으로 묶어 한참을 작게 보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유럽 국가들의 틀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 간 이동에 평균 10시간, 길면 24시간이 걸리는 거대한 대륙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한 달이면 돌겠거니 했는데, 왜 다들 6개월이며 1년 이상을 남미에 투자하는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멕시코시티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비행기를 찾아보다 약 70만 원을 하는 걸 보고 엄청나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남미는 그야말로 거대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아봤자 두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고, 그 안에 모든 곳을 가는 건 욕심이었다. 그래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해야 했다. 많은 여행기들을 읽고 정보를 찾아봤다. 전혀 모르던 곳들을 알게 된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끌리는 곳이 세 곳으로 추려졌다. 마추픽추가 있는 페루,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리고 그냥 그대로도 매력 넘치는 쿠바였다.

특히 쿠바는 올드카와 살사, 분위기만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도 적잖이 매력적이라 한 달 정도를 아예 머물러버릴까 싶어 호스텔 스태프를 지원하기도 했었다. 페루는 남미 여행의 성지라는데 당연히 가야지 싶었다. 남미 여행을 가는 교환학생 친구들 대부분 리마로 들어갔기 때문에 함께 일정을 맞추면 더 안전하고 편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끊은 티켓은 쿠바도 아르헨티나도 페루도 아닌, 엉뚱한 ‘보고타’였다. 사실 아직도 무슨 생각으로 보고타를 첫 도시로 정할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다. 타 국가에 비해서 정보가 부족한 데다 앞선 경우처럼 ‘위험하다’는 소리에 괜히 졸아 있어서 콜롬비아에 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말이다. 첫 도시를 넘어 어쩌다 보니 여행의 메인까지도 콜롬비아가 되어 버렸다.  

이번 여행은 큰 계획 없이 갈 예정이라 티켓을 끊은 이후로 나라나 도시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있다가, 이대로는 좀 불안하다 싶어 며칠 전 첫 나라인 콜롬비아의 도시들만 좀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검색할수록 이 나라도 너무 매력적인 거다. 그래서 생각보다 가고 싶은 곳이 많아졌고, 예상 체류 일수가 늘어나버렸다. 한 달 정도를 콜롬비아에 머무를 것 같다. 물론 쿠바와 아르헨티나도 못지않게 가고 싶긴 하지만, 일이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다음번을 기약해야지 싶다.


참 알 수 없는 여행이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예정에도 없던 여행이, 또 예정에도 없던 도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이 여행이 시작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레 변덕과 우연이 만들어낸 여행은 어쩌면 가장 나 다운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변덕도 우연도 좋으니 자유롭게 헤매고 열심히 느끼는 여행이 되길 바란다. 곧 '진짜' 시작될 여행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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