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칭다오 중국어 (2)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호텔 창밖으로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근처 노점에서 아침을 테이크아웃해 오는 것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비에 모든 게 귀찮게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밖으로 나서자, 흐릿한 도시 풍경과 함께 퍼지는 비 냄새가 오히려 운치 있게 다가왔다. 여행지에서는 이런 순간조차 낯설고 특별한 경험이 된다. 특히 중국어를 가장 많이 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국어가 아닌 말로 하루를 산다는 건, 결국 나를 바꾸는 일이다.”
노점 앞, 중국어로 가득한 메뉴판을 마주하고, 하나씩 해석하며 주문했다. 포장을 요청하고, 수저를 하나 더 달라고 했고,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두 가지 맛 중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다 한국 사람들이 주로 먹는 메뉴가 무엇인지도 물어봤다.
그렇게 작은 가게에서 막 만들어낸 쩐빙과 뜨끈한 만둣국을 사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전부 중국어로 주문하고 사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음식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침을 먹고는 맥주 박물관을 다녀온 후, 점심은 베이징덕 전문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사전 예약도, 자리 안내도 모두 중국어로 진행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반짝이는 오리 껍질과 각종 접시들이 차례로 나왔다. 먹는 법을 듣고 따라 하며,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문화를 배운다는 느낌을 받았다.
숟가락에 얼룩이 보여,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这个有点脏,可以换一下吗?” (이거 조금 더러운데, 바꿔주실 수 있나요?)
그 말을 꺼낸 나 자신이 낯설고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베이징덕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고, 함께 주문한 수박 주스는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뚫어주는 맛이었다.
“我要这个.” (이거 주세요.)
짧고 단순한 문장이지만, 말이 통한다는 것은 음식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 이후에도 ‘헤이티’에서 음료를 해석해 가면서 앱으로 주문하고, 저녁엔 카오위(중국식 생선구이)를 앱으로 시켰다. 큐알코드만 있으면 가게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주문해놓을 수 있어서 1분 1초가 아까운 여행지에서는 앱으로 하는 주문이 참 편리했다. ‘팝마트’에서는 팝빈을 뽑았고, ‘스타벅스’에서는
“我要一杯冰美式咖啡.”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라고 중국어로 주문해 보았다.
오늘 하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我要这个.”
“多少钱?”
같은 짧고 단순한 중국어 표현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문장을 말한 게 아니었다. 낯선 타지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살아낸 하루였다. 중국어가 아니었다면 아침의 노점도, 점심의 레스토랑도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낯설고 두려웠던 첫 중국 여행지에서, 중국어는 나를 조금 더 용감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이곳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조금씩 열리는 언어의 세계 속에서 나 자신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