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정의

#8

by June

단순하게 말하자면, 피고인의 죄를 묻고, 판결을 받아내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세상에서 분리해 놓는 것. 그게 나의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의라는 이름이 점점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살인사건, 강간, 아동 학대, 끔찍한 폭행 사건들. Felony Crimes 부서에서 매일같이 마주하는 세상의 어두움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법정 밖에서는 수사 보고서와 시체 사진들이 쌓여갔고, 법정 안에서는 그 끔찍한 장면들이 증거로 낱낱이 재현되었다.


부검실의 시체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서 있는 것도 (같이 가던 형사들은 꼭 그런 날은 스파게티와 피자를 먹곤 했다), 피해자의 절규를 마주하고도 차갑게 서류를 읽어야 하는 것도 처음엔 ‘프로페셔널함’이라 믿고 버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조차 너무나 버거워졌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다른 길’을 생각했다. 법정이라는 소음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A Few Good Men”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군법무관들이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군복을 입고 국가와 사람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 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법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더 큰 ‘의미’와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군법무관이라는 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그날, 나는 공군과 육군 두 군에 모두 지원서를 냈다. 군법무관 임용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고 치열했다. 서류 심사, 면접, 추천서들, 배경조사까지. 합격률이 1%에서 3%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마음 한편으로는 포기할 준비도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판사실과 검찰청에서의 실무 경험, 그리고 로스쿨 입학 전 미 연방 국토안보국 (U.S.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요원으로 근무했던 이력들이 서류심사와 면접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법률가로서의 실무 경험, 다양한 사건들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국토안보와 정보활동이라는 특수한 경험들이 군법무관이라는 자리에서 필요한 역량을 증명해 주었다.


나는 공군과 육군 모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의 순간,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육군 유니폼이 더 멋있었고, 이왕 입대하는 거라면, 더 힘든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 라는, 돌이켜보면 참 미련하고도 무모한 마음으로 나는 육군을 선택했다.


물론, Georgia 주 Fort Benning 훈련소 첫날부터 나는 나의 멍청한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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