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들을 보라
우선 영화를 만든 이들의 면면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시나리오는 코맥 매카시,
감독은 리들리 스콧,
출연 배우는 마이클 패스벤더, 페넬로페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 하비에르 바르뎀, 브래드 피트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와 수많은 흥행작을 보유한 자타공인 영화장인 감독의 만남.
그리고 이들 중 어느 한 명만 나와도 믿고 볼 법한 배우들이 다 같이 등장한다.
기대치를 높일 만한 이유가 차고도 넘친다. 그리하여 이 영화가 만일 개봉을 앞둔 따끈따끈한 영화였다면 나는 신속히 극장을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 영화를 시간이 훨씬 지나서 알게 되었다. 이토록 화려한 출연진에도 이렇게 조용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영화의 시나리오를 맡은 코맥 매카시는 인간이 가진 잔혹성과 그것으로 인해 구원 따위 꿈꿀 수 없는 세계의 냉혹함을 일관되게 그리는 작가다. 미국 서부개척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초기의 작품들(<<핏빛 자오선>>,<<모두 다 예쁜 말들>>,<<국경을 넘어>> 등)부터 후기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리는 세계에는 오로지 ‘지옥’의 다채로운 풍경들만이 존재한다. 우리에겐 코엔 형제가 만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로 익숙한 그는 이미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 대작가다.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시나리오 <<카운슬러>> 역시 그의 일관된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하지만 거장에게도 형식의 전환이 주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일까? 작품은 작가가 소설에서 보여준 세계관과 영화적 표현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 헤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당시 흥행도, 비평도 썩 좋은 평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소설의 대가와 영화의 장인이 만났음에도 결과는 그들의 범작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그럼에도 화려한 면면의 배우들의 연기는 빛났고(주연도 아닌 작은 역할을 마다 하지 않았던 브래드 피트는 실제로 코맥 매카시의 작품을 즐겨 읽는 독자라 한다) 작가가 고수한 주제의식과 그것을 지켜주기 위해 애쓴 감독의 연출로 인하여 여운은 즐길 수 있었다.
#. 누가 승자인가
영화의 주인공은 카운슬러, 변호사(마이클 패스벤더)다.
머리 좋고 허우대 멀쩡한 그에겐 연인인 로라(페넬로페 크루즈)가 있다. 눈부신 미모의 그녀에게 푹 빠져버린 그는 청혼을 위해 최고급 다이아몬드 반지를 준비한다. 꽤나 무리를 해서 말이다.
시작은 그때부터다.
그는 돈이 급해진다. 자신이 누리는 허세를 유지하고 로라 앞에서 계속 폼을 재려면 말이다.
카운슬러는 사업가, 라이너(하비에르 바르뎀)를 찾는다. 그는 마약밀매를 통해 돈을 벌고 그것으로 온갖 화려한 것들을 착장하고 파티를 열며 흥청망청하는 인간이다.
카운슬러인 그로서는 라이너를 잠재적 고객으로도, 일시적 사업 파트너로도 그가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하는 거래(마약밀매)에 잠시 가담하고자 한다.
네가 앞으로 가게 될 길에서 알량한 도덕심 따위 가져선 안 돼.
그래야 살아남아.
사업에 동참하려는 카운슬러에게 라이너는 이렇게 충고한다. 그에게 변호사 자격증은 '도둑질 면허'쯤으로 인식될 뿐이다. 그러니 알량한 도덕심 따위로 사업을 흐트러뜨리면 안 된다는 경고를 미리 하는 것이다.
그에게 경고를 보내는 것은 라이너뿐이 아니다. 그들의 거래에서 자금세탁과 융통을 맡은 웨스트레이(브래드 피트) 역시 카운슬러와 처음 만나서 거래의 대상인 상대(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잔혹성을 미리 알려준다.
아주 무서운 놈들이야...... 마약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어린 여자애들을 누가 죽였게? 카운슬러, 돈줄을 따라가 보라고. 돈이 많다 못해 절연자재로 쓰고 수천 벌의 옷들과 자동차들을 사들이고 총들도 쌓아뒀는데 윤리적으로 타락했다면 그 돈으로 뭐 하겠나?
그런 것들을 알고 있음에도 웨스트레이가 이 사업에 관여하는 이유는 있다. 자신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능력과 마음가짐이 되어있다는 자기 확신이 있기 때문.
난 쥐도 새도 모르게 돈 챙겨서 뜰 수 있어. 당신은? 다시 말해 순식간에 손 털고 사라지는 거지. 영원히.
사업을 모르는 애송이 카운슬러를 가르치려는 라이너도,
허세 부리는 사업가들을 적당히 이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카운슬러도,
그들의 세계에서 재미만 본 뒤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웨스트레이도,
탐욕과 자신들만의 계산에 취해 그 너머의 세계를 자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 남자는 닮았다.
카운슬러에게 끝내주는 여자, 로라가 있다면 라이너에겐 끝내주면서도 무시무시한 말키나(카메론 디아즈)가 있다.
그녀의 무시무시함은 모든 것을 물질적인 가치로 자동 환산하는 기계적인 본능으로부터 나온다. 그녀는 로라가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고 그녀에게 묻는다. 몇 캐럿이냐고. 순진한 얼굴로 모른다고 말하는 로라의 대답에 그녀는 이렇게 응수한다.
모른다고요? 농담하는 거죠? 어디 봐요. 3.5캐럿이네요. 3.8이거나. 최상품이에요. 아서 컷팅이고... 컬러도 좋고 F나 G등급쯤. 육안으로 보이는 내포물 없으니까 최소 VS 2등급. 얼만지 궁금해요?
연인이 제공하는 보석과 그들만의 은밀한 욕정으로 특별한 감상에 젖어있는 로라의 존재는 말키나 같은 여자가 보기에 자신의 가장 극단에 서 있는 여자가 된다.
애초에 순진한 시절이 거세된 듯한 과도한 섹시미와 탐욕 가득한 말키나에게 모든 것은 물질적 가치로 환원하기 위해 쟁취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런 여자가 남자들이 벌이는 모종의 꿍꿍이에 어찌 돈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는 그들의 거래과정에 몰래 개입하여 운반책이었던 청년을 교묘히 죽이고 마약을 가로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카운슬러와 두 명의 남자를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거액의 마약을 잃은 멕시코 마약조직은 카운슬러의 연인인 로라를 납치하고(결국 죽인다) 라이너를 찾아가 죽인다. 카운슬러는 위험을 피하고 거래과정의 오해를 풀려고도 해 보지만 그가 하는 모든 노력은 무용하기만 하다.
상대조직을 잘 알고 있어서 사라지는 법도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웨스트레이는 결국 말키나에 의해 제거된다. 그리고 그가 챙긴 거액의 자금은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온다. 껄렁껄렁하고 호색한인 그와 한 때 깊은 사이였던 과거의 스토리는 금전적 이익 앞에선 그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영화의 러닝타임 안에서 승자는 말키나인 것도 같다. 그녀와 각별했던 두 남자가 죽었지만, 그녀의 의식 속에서 그녀가 상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거금을 쟁취했다.
탐욕 앞에서 한 치의 감상도, 주저함도, 도덕적 딜레마도 없는 자가 살아남은 셈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최종승자인 것일까?
그녀의 차가운 세계 인식은 그 또한 일시적임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을 몰락시키는 건 싸구려 감상이지... 겁쟁이 보다 더 잔인한 건 없어.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끔찍한 일들은 우리 상상을 뛰어넘을 거야.
탐욕만이 가득 찬 인간들에게 절대 이상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욕망을 향해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 볼리토(bolito) - 돌이킬 수 없는
볼리토가 뭔지 알아?...... 올가미랑 비슷한데 기계로 만들어졌어. 전기모터가 달려 있어서 강철 케이블이 밧줄처럼 조여지지. 배터리로 작동하고 케이블은 특수합금이라 잘리질 않아. 고리 모양인데 사람 뒤에 다가가서 목에 감기곤 한쪽 끝을 조여 놓고 가버리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해. 모터가 작동하면서 고리가 조여지는데 끝까지 완전히 조여지면......
사업에 동참하려는 카운슬러에게 라이너는 수상한 살인기계, 볼리토의 작동원리를 설명한다. 듣는 카운슬러도, 말하는 라이너도 모두 자신에게 일어날 일과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하지만 볼리토의 작동원리는 그들이 발을 걸치고 마는 저편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원리와 닮아있다.
영화 속에서 말키나의 지시로 마약 운반상을 죽인 기구도 볼리토였고 자금을 챙겨 도주하려는 웨스트레이 역시 볼리토가 감긴 채 머리가 잘린다. 쓰레기 처리장에서 버려지는 로라의 몸통 역시 볼리토에 의해 잘린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탐욕의 어떤 선을 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작동되는 원리. 그것은 일개 개인이 감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 거악의 늪, 그 자체가 된다. 미세한 철사 하나가 목에 감기기만 하면 뜯어낼 수 없이 그저 목이 잘릴 때까지 감수해야만 하는 볼리토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렵게 연락이 닿은 저편의 조직 보스는 카운슬러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결과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은 모두 다르지. 시체가 사막에 묻히는 어떤 세상이 있고 쓰레기처럼 길바닥에 버려지는 또 다른 세상이 있어. 우리는 이 모든 세상을 알 수 없지만 항상 존재해 왔던 거지....... 자네가 어떤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지 않겠네. 자네가 실수를 저지른 세상과 그 실수를 되돌리려 노력하는 세상은 다른 곳이네.
영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과욕과 과신에 젖어 함부로 세상을 안다고 말하지 말라.
그 세상에서 얄팍한 잔머리로 이용하고 재미 볼 수 있다는 착각도 말라.
오만이 두드린 지옥문이 열리는 순간, 볼리토가 작동되리라.
또 하나, 영화의 주인공이 유일하게 이름이 없는 이유.
그것은 특정한 환경을 살아가는 유일무이한 어떤 존재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지옥문을 두드리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노작가의 경고가 아니었을까.
알량한 잔머리로 오만을 부리며 세상을 안다고 자부하고 그래서 적당히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고 계산하는 자들이 그 어느 곳에 또 있다면 말이다.
인간이 가진 악마성과 잔혹성, 그리고 그들이 창조한 거악의 세계에 누구보다 정통한 작가의 경고를 수시로 되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