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푼젤 라푼젤, 머리를 내려라

밧줄처럼 긴 머릴 땋아 내려 보낼 터이니 나를 좀 꺼내가시오.

by Dichterin 여자시인

라푼젤 라푼젤, 머리를 내려라



누구든지

그렇게나 보고 싶은 밤이면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물을 묻혀 빗질하다가

양 옆 한 줌씩 머리칼을 쥐고

땋아버린다


가장 보고 싶은 이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고

없고

없는데

그게 늘 조금 슬프고

서운한데


땋은 머리칼의 볼록한 면을

검지 끝으로 건드릴 때 드는

리듬감을

서운함과 그리움 위로

덮어버리고 싶다


나는 단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다

머릴 좀 자르고 나면

내 행복의 수명이 연장되고

내 불안정한 신분에도

탄탄한 지지대가

생겨줄까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물을 묻혀 빗질하다가

문득 나는 지금

칠흑의 밤을 한 움큼 쥐고

얼굴을 파묻는 중이다


높다란 탑에

볼모로 사로잡힌 밤이면

라푼젤 라푼젤, 머리를 내려라

이 귀하신 몸

황금 계단 타고 올라갈 수 있게

외치는 소리 들리는데


밤에 갇힌 포로에게

전령이 된 시인은 동아줄을 쥐듯

내 땋은 머리채를 타고 밤을 건너

양피지 둘둘 말은 석방의 칙령을

건네주러 올까

와서 낭랑히 읊어줄까



포로는 석방을 기다리며 탑 밖의 세상을 갈망하는데, 밤은 무심하게 어둠을 뿌려 감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