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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an 06. 2022

발가락 사이 (詩)

이민 첫 해 생애 첫 무좀을 겪으며 쓴 자작시



신발 속에 발가락들이

다닥다닥 붙어살다가

기어이 무좀을 키워냈다

발가락 사이사이에

하얀 각질이 일어났다

하얀 각질 사이사이에

균들이 증식하고 있을테다

발가락이 곪았다

곪아서 허옇다

가렵지는 않다

무좀연고를 바르다가

바르는 폼이 남우새 스러워서

혼자 웃다가

손가락에 남은 연고를

맨 허벅다리에

스윽스윽 문질러 없애고는

욕지기가 잠시 치솟다가는

다시 또 퍽 서럽다가도

또 웃기다가도

또 창피하다가도

낄낄대다가

끅끅하고

세워앉은 무릎에다

콧잔등을 대고는

울어버리고 싶었다

발가락 사이에

계곡처럼 파인 자리에

이런 제기랄

약국가서 소곤소곤

무좀에 걸렸어요 하고

사가지고 온 연고를

뿌렸다

맨드름하니 번들거리는

맨발가락들이

슬프다

흘린 눈물로

곰팡이 슬은 발가락들을

씻어주고 싶다

마음에도 잔뜩 자라난

이끼같이

진균이 증식하는데

눈에도

머리에도

어디에도

진물이 나는데

그게 자꾸 서러운데

고쳐지지가 않는다

혼자 또

욕을 하다가

조금 더 울다가

자리에 누워 얼굴을 훔친다




2015년 7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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