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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Jan 18. 2022

비주류가 되고 싶은 주류 아닌가요?

소프트웨어적 비주류가 되고싶어 | 비주류라는 자기 비하 & 자기 위안


하드웨어적 주류 + 소프트웨어적 비주류



앞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마이너함을 누구나 저마다씩 가지고 있는 태생적 고유함이라고 했다.

드랙퀸도 블랙도 아니라서: 마이너 서사 (brunch.co.kr)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예전에 자우림의 리드싱어 김윤아가 MBC 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했다. 그때 패널로 나와있던 이하늘과 김나영이 스스로를 비주류라 칭하는 김윤아에게 했던 말들이 여전히 간간히 회자되고 있다. 그때 평소에도 짓궂고 악동스럽기로 유명했던 이하늘이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비주류가 되고 싶은 주류는 아니고요?


당사자는 당혹해했고, 주변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농담으로 버무려서 화제를 돌리는 선에서 끝났다. 만일 이 프로그램이 웃자고 보는 예능이 아니라 조금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1대 1 토크쇼나 인터뷰였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황에서 김윤아의 대답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진 이하늘의 후속 질문은 또 어땠을까?


또 그때 함께 출연했던 김나영은 그녀에게 남편 (S대 출신 치과의사에 문화예술 분야로도 다재다능한 엄친아) 잘 고르지 않았냐, 남편도 주류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었다. 이들이 하고 싶었던 말은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칭하는 아티스트에게 사실은 겉보기에는 굉장히 메인스트림적인 것들을 다 취하여 살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그 와중에 나는 뭔가 독특함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포지셔닝하는 것이 아닌가? 정도의 메시지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 일화만 해도 또 주류, 비주류, 다수, 소수 이런 것들에 대한 편 가르기가 보였다.

락밴드이면서도 전파도 타고 이제 하나의 네임드 브랜드가 된 그녀의 밴드, 그리고 또 솔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그녀의 입지. 그녀의 외적 조건들. 그녀의 남편과 시댁의 사회적 지위. 중산층의 안락한 삶. 그런 것이 주류사회로의 진입이라면 그녀는 주류가 맞다.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상기의 조건들이 그녀의 주변에 세팅되어버린 이상 주류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하드웨어적인 주류가 소프트웨어, 즉 그 콘텐츠의 주류로 반드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주류적인 토양에서 그녀가, 그녀의 남편이 함께 일구어 피워내는 꽃과 맺고 있는 열매는 반드시 주류적인가? 반드시 주류적이지 않다면 그 대척점에 선 것은 비주류적인 것뿐인가? 그 둘을 함께 욕망하면 안될까? 


김윤아가 스스로를 비주류라고 하는 맥락 속의 비주류는 무엇이고, 이하늘과 김나영이 주류라고 하는 주류는 무엇이고 또 그들 맥락의 비주류는 무엇인가. 그런 외적 주류 조건 가질 건 다 가져놓고서 왜 진짜 힘들게 못 먹고 없이 살면서 자기 길 홀로 개척하는 사람들 밥그릇까지 탐내려고 하는가, 비주류라는 감투로 있어보이려고 하느냐 와 같은 비판적 논조와 함께, 주류적 토양을 갖춘 사람들에 대한 그걸 갖지 못한 사람들의 시기심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하늘과 김나영은 이 양가적인 감정으로 김윤아라는 대상에게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질문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예능프로에서 웃자고 던진 말은 아닐 것만 같다. 웃자고 듣기에는 뼈가 있다.


주류라는 말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봤을 때, 세속적인 안락함과 안정감을 주는 것, 더 나아가 기득권에 편입되어있는 상태로 이해된다.  하여 그 사회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혹은 그 사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대우를 받을 위치에 놓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주류적 토양을 확보하는 것은 굉장히 현실적이고 전략적으로도 긍정적인 일이다. 그 와중에서도 콘텐츠적 비주류를 꾀한다는 것은 주류로 대변되는 어떤 정형화된 '틀'을 깨 보려는 시도를 하거나, 그런 틀대로 맞춰가기보다는 자기 개성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이 될 수 도 있는 일이다. 주류적인 안전망, 사회경제적 쿠션을 깔아서 안정을 추구하되 그렇게 확보된 안정감으로 자기 태생적 고유함, 그 고유한 자기의 콘텐츠, 자기의 취향, 자기의 스타일로 나름의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일을 찾아보겠노라는 인생철학이 있다면 나는 그것도 참 매력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비하 & 자기 위안: "난 비주류인거 같아."


이 방송이 전파를 탄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이지만, 나는 여전히 저 질문에 가슴이 철렁한다

이하늘은 저 질문을 김윤아에게 던졌는데, 왜 저 질문에 대해 내가 답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드는 걸까. 


나는 스스로를 늘 마이너 하다고 여겨왔지만, 또한 나는 그 누구보다도 메이저가 되기를 갈망한다.


앞으로 차차 더 써나갈 테지만 나의 '마이너 됨'은 엄청난 양의 콤플렉스에서부터 출발했다. 메이저가 되고 싶었던 내 콤플렉스 말이다. 하지만 정작 메이저가 되고 싶기는 하지만 거기 한 번 편입되는 순간 빛을 잃어버리고 말 것 같은, 무색무취해지는 정형화된 것들은 거부하고 싶어 진다. 메이저가 되기를 언제가 갈망하지만 나를 자꾸만 마이너라고 자기 비하용으로도 말하고, 자기 위안용으로도 말하는 까닭은, 내가 생각하는 마이너는 바로 '콘텐츠적인 비범함, 자유로움, 다양함' 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경제적 지위라는 방패를 두르고 싶고 그러면서도 속 알맹이는 얼마쯤 똘기도 좀 있고 범상치 않고 독특하고 화려하고 늘 할 이야깃거리가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내 욕망이다. 나는 잘 살고 싶고 또 폼나는 위치에도 있고 싶은데, 현실은 그저 요원하고 그런데 내가 가진 이런 식의 자기모순들마저, 내가 가진 피해의식마저, 나의 콤플렉스마저 다 닦아서 쓰고 싶단 말이다. 내 이야기를 하는 도구로,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소스로 쓰고 싶단 말이다.


이제쯤 되면 나는 내 욕망과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마주 보고 앉아야 한다.

나는 구별되는 콘텐츠를 갖고 싶었다. 

나는 구별되는 취향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기어이 이민까지 나온 것이었을까?

그런데 자꾸만 이걸로 불충분하다는 생각만이 든다.

독특한 이력을 만들어보려고, 독특한 삶을 살아보려고 할수록 삶은 평범해졌고 그렇다고 다 잊고 평범히 살아보려고 하면 자꾸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툭 불거져 나온 불순물처럼 까끌거리고 불편하다. 내가 불편하다. 그 속에 섞인 내가 불편하다. 평범이 불편하다. 


그것이 내 마이너가 되고픈, 내 욕망이다.

내 태생적 고유함이 빚어낸 나만의 비주류성을 독특하고싶은 나를, 내 콘텐츠를, 내 취향을 가지고 나는 주류의 인정을 받고 싶다고 오늘도 나는 야무지게 욕망하는 중이다. 




며칠 전 난 정말이지 소설은 도저히 못 쓸 모양 같아서, 앞으로도 제대로 된 건 영영 못쓰고 끝날 것 같아서 울었다. 엉엉하고 울었다.


못쓰면 안 쓰면 돼지.


와 같은 말을 들었다.


이건 내가 난 메이저가 되고 싶은데 될 수 없는데, 한편으론 또 마이너도 되고 싶어서 그 사이에서 생떼를 쓰고 있는 모습의 이면인 것만 같다. 


결국엔 나는 한갓 떼쟁이에 불과한데 그래서 저 오래전 한 예능프로에서 나온 저 '남의 질문' 조차도 '나를 향한 질문' 같아서, 내 떼쓰는 모습이 건드려진 것 같아서 뜨끔했다. 


욕망만 하고 아무 소출이 없어 철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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