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창문 없는 방>
이제는 대부분의 것들은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가끔 어느 한 때에 누군가 어느 한 공간에서, 어느 한 상황 속에 사로잡히듯 붙박여 있었을 때 그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던 기억. 허공을 가르듯이, 중얼거리듯이 조금씩만 움직인 입술이 열리며 메마르고 갈라지는 음성으로 만들어 낸 소리였다.
이름.
자신의 이름이 그토록 서늘하게 낯설었던 적은 전에 한 번 없었으며 아마 앞으로도 내내 없을 것이라고 그 순간 여자는 생각했다.
집에 있을 때면 여자는 이따금 창문이 없는 방의 벽을 빙 둘러가며 응시했다.
사 면이 모두 너무 정갈하게 도배되어 있다. 정말로 여기에 창을 하나 내면 그 부동산 중개인의 말처럼 여러모로 훨씬 나을 수 있을까? 창문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를 손바닥으로 짚어 찾아낸 여자는 거기에 가만 귀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이라는 듯이 먹먹한 얼굴을 하고 자기 이름을 몇 번이고 불러보았다.
뻐끔뻐끔 어항 속에 든 금붕어 같이, 조용조용 가만가만히 잊어버려진 모든 것들을 소환하기라도 하듯이, 혹은 되려 저만치 떨쳐내기라도 하듯이.
예상외로 치과의사는 젊은 남자였다.
생각보다도 너무 젊은 남자였다.
여자는 그가 전문의 자격증을 벽에 걸어놓고 있는 사람이며 자기 입 속의 그 자그마한 사랑니를 뽑아갈 사람일 줄은 몰랐다.
여자는 나중에 그렇게 회상한다.
그 남자는 그냥 그 하얀 의사 가운이 왠지 참 어울리지 않았다고.
하얀 가운보다는 청색 남방이나 올리브색 깅엄 체크무늬 셔츠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너무 젊은 남자였다고 그렇게 기억했다. 자기 관리를 잘해 나이보다 훨씬 젊어 뵈는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로 이제 갓 소년 티를 조금씩 벗기 시작한 스물 지난 남자라 해도 믿을 만큼 풋풋한 어설픔 마저 느껴지는 외모였다.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한 전문직 종사자인데, 꽤나 마이너스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오지랖 넓은 걱정마저 들게 했다.
의사는 친절했다.
여자는 거기 덧붙여 이렇게 회상한다. 사실 그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친절했을 것이라고.
여자는 치과에 꼭 네 번을 가야 했다.
이를 뽑으러, 소독을 하러, 꿰맨 자리가 덧나서 마취 없이 두 땀을 더 꿰매러, 실밥을 풀러.
여자는 그곳에서 그 남자를 세 번 보았고 네 번째에도 보았다. 마지막 날에는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을 뿐. 여자가 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닥에까지 피를 튀길 만큼 열정적으로 한 사내의 쩍 벌린 입가에 간호사 두 명과 매달려 사투를 벌이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