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01화 홍옥 - 선 보러 가는 길 (brunch.co.kr)
잔뜩 마음을 먹고 걸어가다가 문득 한 가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남자가 기껏 비싼 커피값을 지불해 가며, 자기 몫 까지 두 잔을 계산했는데 여자가 차 한 잔 잘 얻어 마시다 들어간다는 태도를 보이면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느냐고 눈을 흘기거나 윽박지르거나, 것도 아니면 주선자에게 그녀의 욕을 해서 그 욕이 다시 그녀의 맞선과 그를 통해 얻을 결혼에 여생의 모든 여남은 기대를 투척한 엄마의 귀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는 계산이 섰다. 그녀는 이렇게까지 해서 도대체 그 맞선이라는 것을 보러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을 동정했으나, 그 맞선을 일생에 어느 때보다 전례 없이 적극적인 자세로 주선하는 엄마를 더욱 불쌍히 여겼다. 그녀는 엄마를 가엾이 여기기로 했다. 그냥 얼굴 한 번 내비치고 돌아오더라도 책 잡힐 일은 만들지 말자고 그녀는 현금 인출기 앞으로 갔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여자는 계속해서 계산기를 굴려보았다.
아무리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호텔이 아닌 그보다 한 단계 좀 낮은, 그러나 주선자의 말로는 '요즘 멋쟁이들만 간다 하는 캐주얼한' 호텔이라 할지라도 그런 데서는 커피값이 다 해서 기본이 만 오천 원쯤 한다던데. 쓸데 없는 걱정이 슬그마니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그럼 혹시 차 잘 마시고 갑니다 했을 때 남자가 다시 만나지도 않을 거면 당신 몫은 당신이 내고 가라 할 때를 대비하여 만 오천 원을 만 원짜리 한 장, 오천 원짜리 한 장 깔끔하게 내고 와야지 싶었다. 좀처럼 현금을 쓸일이 없던 일상에서 오늘만큼은 굳이 현금으로 내놓고 오고 싶었다. '옛다, 봐라' 하고 덜렁덜렁 지폣장을 꺼내다 테이블 위에 얹어두고 나오고 싶다. 그런데 또 혹시 모를 일이었다. 만일 막무가내로 그냥 그렇게 갈 거면 당신이 다 내고 가라고 하는 최악을 만날 수도 있으니 두 사람 분의 삼만 원은 적어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계산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여자는 나름대로의 유사시 대비책으로써 현금 삼만 원을 뽑아 지갑에 넣었다. 그러나 혹시 혹시 혹시 모를까 봐 택시라도 타고 돌아올지도 모를 만일을 위해서 지폐 칸 안에 따로 지퍼로 여며놓은 안주머니에 접어 넣어둔 비상금의 흔적을 엄지손가락으로 두어 번 건드려보았다. 만반의 준비는 끝난 것 같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은 생소했다. 맞선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도대체 또 얼마나 결혼에 시급한 사람이 나올지 나와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지 그때에 그녀는 뭐라고 적당히 이야기를 되받아 쳐야 할 지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보았다. 택시를 타고 가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그녀는 그냥 버스를 탔다. 택시 타고 가야 옷매무새가 덜 구겨진다고 했었는데, 이미 버스에 올라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