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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화장실 가기

by 수쥐



우리 집은 화장실이 밖에 있었다. 욕실은 집 안에 있었지만 대소변을 보는 화장실은 밖에 있어서 항상 밖에 나가 용변을 해결해야 했다. 집 앞마당 오른쪽 모서리에 조그마한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그땐 불편한지도 몰랐다. 그게 당연한 거였다.


오히려 불편함보다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한밤중에 소변이 마려우면 마당으로 나와 좁은 화장실 안에서 혼자 용변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골의 밤은 아주 어둡고 고요한데 그 적막의 깊이가 남달라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정말 크게 들린다. 마을의 모든 집이 잠들면 그야말로 어둠과 고요 속 나홀로인 기분이 들어 겁을 잔뜩 먹었던 것이다.


나와 내 동생은 두 자리 숫자의 나이도 아직 먹지 않은 어린이들이었다. 3살 터울의 언니인 나도 자는 동생을 깨워 같이 가달라고 해야 할 정도의 공포였다. 단잠에 빠진 동생을 깨우는 것이 미안하긴 했지만 혼자 갔다간 너무 무서워서 나간 지 5초도 안돼 뛰어 들어올 게 뻔했다.


밤에 서로 화장실을 함께 가주는 것은 서로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화장실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단한 잠을 깨울 수는 없었다. 우리는 아무리 한밤중이어도 화장실을 가자고 깨우면 졸린 눈을 채 뜨지도 못하면서 서로를 위해 일어나 주었다.


하지만... 같이 가도 무서운 건 매한가지였다. 꾹 참고 다녀올 수는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화장실 문 앞까지 가면 문을 여는 것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안을 들여다보기 겁나는 마음으로 끼익 겨우 문을 열면 먼저 천장에 매달린 줄을 잡아당겨 화장실의 불을 켜야 했는데, 문을 열고 어둠이 가득 들어찬 허공을 향해 손을 뻗는 것도 무서웠다. 어떤 날은 줄이 잘 잡히지도 않았다. 마당엔 달빛이 환했지만 화장실 안까지는 가득 들어차주지 않았다.


딱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에, 용변을 봐야 하니 한 명은 마당 반대쪽 장독대 위에서 상대를 기다려주었다. 거리는 4-5미터쯤 되었다. 그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화장실에 있으면 온 사방이 무서웠다.


우리 집 재래식 화장실은 물이 없고 변기 밑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에 용변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구태여 그 안을 잘 들여다보지도 않았지만 그 컴컴한 아래 구덩이는 상상력을 너무나 자극하였다. 불쑥 손이 튀어나오는 상상이 들었고, 천장에선 뭔가 내려오지 않을까, 저 멀리 있는 동생보다 먼저 뭔가가 나에게 다가오진 않을까... 나도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상상들이 뻗어나가면 순식간에 무서움이 나를 압도했다.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그래서 용변을 보는 동안도 문을 꽉 닫지 않고 살짝 틈이 있게 열어놓았다. 그래도 서로가 보이진 않으니 1분에도 몇 번씩 ‘혜지야 거기 있지?’ 혹은 ‘언니 거기 있어?’하고 물어보면서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됐다. 만에 하나 동생이 그 사이에 먼저 들어가 버렸다면 나는 기절했을 것이다. 서로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어도 우린 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안심하곤 했다.


그리고 얼른 용변을 마치고 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려주는 이도 오밤중에 벌레만 우는 마당에서 혼자 있는 건 겁나는 일이었고 화장실 다녀온 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둘 다 겁먹어 서두르니 서로 또 더 긴장해서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번 밤중마실을 다녀오면 이제 그날 밤화장실은 다녀온 것이니 마음이 좀 놓였다. 다행인 건 둘이 따로 깨어 번갈아 두 번씩 다녀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정신이 번쩍 들만큼 잔뜩 겁을 내며 화장실에 다녀오면 잠이 달아날 법도 했지만 이불속에만 들어가면 마음이 이내 노곤해졌다. 이제 겁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긴장이 사르르 풀렸기 때문이었다. 제일 아늑하고 편안한 곳으로 돌아오자 눈꺼풀은 다시 꿈나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주무시는 할머니 옆에서 동생과 나는 무서운 생각은 금세 싹 잊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단잠에 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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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불만 빛나는 시골의 어두컴컴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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