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슈퍼 가기가 제목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앞편에서 언급했듯 마을 유일의 슈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슈퍼는 왕복 3km 거리였다.
걸어서 그 슈퍼를 가려면 마을을 벗어나 위험한 모험을 하는 것과 같았다. 마을마다 이어지는 길이 따로 있지 않고 도로 쪽을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부분은 도로와 인도의 경계가 모호했고 큰 도로라 차가 빠르게 지나다녔다. 꼭 사야 할 것이 있지도 않았고 위험하고 오래 걸리는 일이기에 마을 슈퍼가 사라졌어도 그 슈퍼까지 갈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화창한 어느 날, 나는 그날따라 갑자기 라면이 무척 먹고 싶었다.
보통은 우리 마을에 있던 슈퍼에 가서 사 오거나 면에 나갔을 때 사 오곤 했는데 슈퍼는 사라졌고 그날따라 집엔 라면이 없었다. 고민은 잠시, 나는 다녀오기로 했다. 할머니에게는 딱히 말씀을 드리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딜 간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매일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복 3km의 도로를 따라 이어진 길을 다녀오는 것은 다른 얘기였다..
잠시 변명을 하자면 할머니는 끔찍이 손녀들을 아끼시면서도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산을 타고 물에 들어가도 나무란 적은 없으시다는 거다. 그리고 한 번도 마을 안에서 크게 다친 적이 없었다. 곤충들의 공격을 받은 적은 있지만..
어쨌든 나는 출발했다. 도로가 하나뿐이었기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때 늘 보는 길이었고 익숙한 길이었다.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니 낯설게 느껴졌다. 큰 도로를 옆에 두고 직진만 하는 길이어서 가는 내내 자동차가 쌩 지나다녀 조금 무서울 때도 있었다. 마을과 멀어질수록 더 긴장이 생기고 겁이 났다.
그리고 어느 지점부터는 울며 겨자 먹기였다. 이미 멀리 와버려 돌아가기도 똑같이 멀었고 라면을 얻지도 못하고 돌아가면 허무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차로 다닐 땐 가깝더니 지금은 가도 가도 멀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걸었다. 그래도 무사히 슈퍼에 잘 도착했고 라면을 산 뒤 또 먼 길을 갈 때보단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좀 더 수월했다.
나의 3살 어린 동생은 깜짝 놀라며 언니가 옆마을 슈퍼에 가서 라면을 사 왔다고 할머니에게 조잘대었다. 할머니는 경악을 하시며 위험하다고 다신 가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조금 무섭긴 했지만 막상 다녀오니 괜찮아졌고 딱히 위험한 순간은 없었으므로 그렇게까지 큰일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힘들기도 했고 너무 멀어서 가는 내내 지루했기에 할머니 말씀대로 그 뒤로는 그 슈퍼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러 동생과 내가 장성한 어른이 되었음에도 동생은 이 사건을 언급하며 ‘아니 세상에, 언니 그때 라면 먹고 싶다고 옆마을 슈퍼까지 다녀왔었잖아!’라며 한바탕 웃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