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은 큰 도로를 위에 두고 전부 아래쪽에 모여 있었다. 큰 도로 왼쪽으로 도로를 타고 한참을 가면 가장 가까운 읍내로 나갈 수 있었고 반대편인 오른쪽으로 한참을 가면 무려 군청이 있는 시내로 갈 수 있었다.
장날이면 그 두 곳 중 한 곳을 가곤 했었는데 두 곳 모두 나에겐 아주 특별한 곳처럼 여겨졌다. 내가 접하는 가장 큰 번화가이자 사람과 가게가 즐비한 생동감 있는 곳이었고 평소엔 못 보던 것들을 잔뜩 볼 수 있었다.
시내에서 돌아오는 버스 막차가 이른 저녁 시간이어서 혹여라도 늦지 않게 돌아오려면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준비를 해서 나가야 했다. 나는 잠이 많아 간혹 할머니를 따라나서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장날만큼은 거의 할머니를 따라갔다. 아무리 졸려도 장날을 놓칠 순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할머니는 아껴두던 예쁜 색들의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며 하나뿐인 루주를 티도 안 날 만큼 얇게 바르고 외출 준비를 하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루주가 보이지도 않는다고 더 바르시라고 했다. 이왕 꾸미시는 거 더 예쁘게 마음껏 꾸미셨으면 했다. 할머니는 입술이 시뻘거면 남사스럽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래도 꼭 살짝이라도 화장을 하시던 모습을 보면 우리 할머니도 여자구나 싶어 어딘가 마음이 찡했다.
신발이며 가방까지 평소엔 잘 안 신고 안 드는 것들로 치장을 마치시면 내 마음까지 화사해졌고 우리 할머니가 사람들 바글바글한 장날버스에서 제일 예뻐 보였다. 내심 쑥스러워 더 조용해지시는 할머니께 나와 동생은 할머니가 제일 예쁘다고 꼭 말씀드리곤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어느 날은 약국도 가고, 어느 날은 할머니 파마도 하고, 어느 날은 우리 신발도 샀다. 할머니는 주기적으로 뽀글 머리 파마를 하셨으니 그때마다 우린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밖을 돌아다니다가 할머니 파마가 다 끝났나 싶어 미용실에 가면 할머니가 꾸벅꾸벅 조시다가 우리를 보고 ‘좀 더 있어야 된댜~‘ 하셨다. 그럼 또 더 나가 놀다가 다시 와보면 할머니 파마가 끝나서 할머니가 가자고 하셨다. 그럼 얼른 할머니 손을 잡고 다시 시내로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장날은 역시 음식이었다. 닭집에 가 종이상자에 가득 들어있는 치킨을 사서 오기도 하고, 갓 튀긴 어묵바를 사 오기도 하고, 찹쌀도넛을 사 오기도 했다. 마음속으로 행선지를 다 정하고 오신 듯 별말씀도 없이 앞서 걸어가시는 할머니를 따라 서너 곳을 들르고 나면 벌써 집에 갈 시간이었다.
개장시간이 끝난 놀이동산에서 지는 해를 뒤로 하고 털레털레 걸어 나오듯 집에 돌아오면 다 같이 사 온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뜨거운 물을 섞어 목욕물을 받아주시면 찰방찰방 몸을 씻고 우리는 평소보다 얌전하게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