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지금 말로 은근한 인싸였다. 그런데 말수가 많거나 외향적이신 것은 아니셨고 조용한 성격이셨지만 모든 사람이랑 알고 꾸준히 사람을 많이 만나셨다. 할머니는 작은 체구에도 걸음이 빨라 그 뒤를 따라가려면 발을 열심히 놀려야 했다.
할머니는 혼자서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어떤 날엔 마을 다리 위에 앉아 마을사람과 담소를 나누고 계시고 어떤 날엔 옆집 이장할머니댁에 가 계시고 어떤 날엔 좀 찾아봬야겠다며 마을 최고 어르신 집으로 향하셨다. 또 우리 집으로도 할머니들이나 아주머니들이 자주 찾아왔다. 가끔은 우리가 잘 모르는 분들도 있어서 할머니가 안 계실 때면 나중에 할머니께 말씀드릴 때 대강의 생김새밖에 전달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우리 마을 주변으로는 한두 집씩 외따로 떨어져 있는 집도 듬성듬성 있었고 큰 도로 건너편에도 몇 집이 있었는데 할머니의 마당발이 안 미치는 곳은 없었다. 언제 다 알게 되신 건지 신기했다. 하긴 평생을 이곳에서 사셨으니 당연한 걸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꼭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간 게 아니더라도 할머니는 어느새 보면 쿨하게 사라지시곤 하셨다. 그럼 나는 동생에게 물어보거나 직접 할머니를 찾으러 다녔다. 할머니가 어디 계시나 궁금했고, 찾아보면 자꾸 할머니 혼자서만 궂은일을 하고 계셔서 도와드리고 싶기도 했다. 또 할머니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궁금한 것을 잔뜩 물어보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집안에 할머니가 안 계시는 걸 깨달으면 확률이 높은 곳부터 할머니를 부르며 찾으러 다녔다.
할머니는 밭일을 하시거나 방을 데우기 위해 불을 지피거나 마당을 비롯해 집 주변을 돌보느라 쉬지 않고 움직이셨다. 그래서 집에 할머니가 없으면 일단 마당부터 집옆 텃밭, 나무보일러가 있는 곳, 닭장이 있는 뒤편까지 할머니~~ 하고 부르며 할머니를 찾았다. 그러다 할머니를 발견하면 할머니는 ‘이~~’하고 왜 나왔냐며 다정하게 말을 건네주셨다. ‘할머니 뭐 하세요??’하면서 할머니가 하는 일을 신기하게 물어보면 할머니는 찬찬히 대답해 주셨다.
‘이렇게 땅을 살살 파면 감자가 알알이 나오다는 얘기’
‘이 옥수수는 씨알이 좋아 먹지 않고 옥수수잎을 땋아서 매달아 놓고 말리는 것이라는 얘기’
‘이건 쪽파 심어놓은 것이며 이건 대파 심어놓은 것이니 밟으면 안 된다는 얘기’
‘밤사이 나무가 다 타면 방이 식으니 장작을 계속 넣어주어야 한다는 얘기‘
......
할머니는 내가 물어보는 것은 다 대답해 주셨다. 그리고 ‘할머니 이거 이렇게 하면 돼요?’하면서 할머니를 도와드리려고 하면 항상 얼른 들어가라며 금방 가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늘 하던 일을 다 마치고서야 들어오신다는 걸 알았던 나는 그래도 옆에 붙어 조잘대며 나름 손을 더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했던 것이다.
큰손녀인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더 바쁜 할머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언제나 우리에게 다정히 대해주셨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는 쪽파 심은 자리 주변 흙을 손으로 다지시면서 나의 쉴 새 없는 질문에 차근차근 온기 어린 목소리로 답을 일러주시던 장면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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