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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기 팔기

by 수쥐



우리 마을 바깥쪽, 그러니까 큰 도로와 마을 사이로는 얕은 하천이 흘렀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우리는 곧잘 하천에 가서 놀곤 했다.


물속에는 그곳만의 생태계가 있어서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신기하고 낯설었다. 코에 물에 닿을 듯 눈이 빠져라 안을 들여다보면 송사리도 보이고 다슬기도 보이고 자글자글한 모래나 자갈도 보였다. 송사리를 잡아보고 싶어 손을 모아 조심스럽게 다가가면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송사리들이 달아나버렸다. 그래도 다슬기는 잡기가 아주 쉬웠다. 돌 위에 붙어있는 다슬기을 떼어내기만 하면 됐다. 잡아도 딱히 쓸 데는 없어 금세 물속으로 놓아주었긴 했지만... 이렇게 놀다 보면 손발이 쪼글쪼글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은 할머니가 다슬기를 잡으러 간다고 하셨다. 하천 여기저기 잔뜩 붙어있는 다슬기를 잡아 시장에 가서 팔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도 당연히 빠질 수 없었다. 자신 있는 분야였던 것이다. 이번엔 놀러 가는 것이 아닌 오로지 다슬기 잡는 것을 목표로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 하천으로 갔다.


오늘은 다슬기만이 목표이기에 눈에 불을 켜고 다슬기를 잡았다. 바로 눈에 띄는 것도 잡고 돌이 뒤집으면 나오는 다슬기도 잡고 자갈 사이 숨어 있는 것도 잡았다. 쉬지도 않고 열심히 잡았다고 생각하며 통에 다슬기를 담으러 갔는데 할머니가 잡은 다슬기가 이미 한가득이었다. 할머니도 똑같이 손으로 잡고 계신데 도대체 언제 이렇게 많이 잡으신 건지 충격이었다. 몇 번을 손에 가득 다슬기를 잡아도 할머니의 속도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장에 팔 다슬기 중에 내가 잡은 것도 일부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내가 잡은 다슬기가 사람들에게 팔려서 돈이 된다니!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걸 살 사람이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매일 물놀이하며 보는 건데... 그냥 잡았다가 그대로 다시 물에 놓기도 하고.. 돌멩이처럼 그저 거기에 있는 자연 속 생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쨌든 그래도 할머니가 하시는 일은 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었고 전부 할머니가 하시는 걸 보면서 배웠기 때문에 ‘다슬기는 시장에서 팔린다는 걸 할머니는 잘 알고 계신 거겠지’ 하며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열심히 다슬기들을 잡아나갔다.


시장에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으려면 제법 무게가 나가야 했고 그만큼 다슬기를 잡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계속 물속을 들여다보려니 허리도 아프고 나중 되니까 재미가 조금 떨어지기도 했다. 왜 할머니가 그동안 한 번도 다슬기를 잡아 팔지 않으셨는지 알 것 같았다.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무거운 다슬기를 들고 시장까지 가서 사람들에게 파는 일까지 남아있었는데 이것까지 생각하면 그다지 남는 장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아마도 몇십 년간의 농촌생활을 통해 얻은 감으로 날씨라든지 하천의 물색이라든지 무언가를 살피셨거나, 우연히 들여다본 하천에 모여있던 다슬기들이 유난히 통통했거나, 아니면 저번 장날에 어디선가 다슬기가 제법 잘 팔리고 있는 것을 보고 요번엔 다슬기를 한번 잡아다 팔까 하는 생각을 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구태여 말을 하지 않아도 할머니가 하시는 일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늘 도구를 들고 혹은 맨손으로 어딘가를 나서서 거침없이 무언가를 착착하셨고 나에게 그건 너무 신기하고 신비로운 세상이었다. 할머니는 어떻게 저런 것들을 다 알고 계실까. 비 오면 올라오는 지렁이 마음도 아시고, 몇 개 남겨 놓은 감을 쪼아 먹는 까치 맘도 아시고, 어떻게 해야 쪽파며 대파며 감자, 깻잎, 옥수수, 콩, 고추가 안 죽고 잘 자라는지도 아시고 그저 망설임 없이 해야 할 일들을 하셨다.


그렇게 다슬기도 수북이 잡고 장날이 되어 그것을 가지고 장에 가셨다. 하필 나는 그때 늦잠을 자서 (일부는) 내가 잡은 다슬기가 어떻게 팔렸는지 보지 못했다. 너무나도 아쉬워서 동생에게 물어보았는데 시장 한편에 자리 잡고 앉아 있으니 금세 사람들이 사갔다고 했다. 신기했다. 그래서 다슬기를 판 돈으로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어묵바도 사다 주셨다. 어묵바로 바뀐 다슬기라니.. 한입한입이 더 묵직하고 남달랐다.


그날 이후로 다슬기를 잡아다 판 적은 없었지만 나는 너무나 납득했다. 저 작은 다슬기를 또 잔뜩 잡아한 바구니를 채울 생각을 하면 지루함이 물밀듯 몰려왔다. 어묵바 한 번이면 족했다. 그럼에도 가끔 물놀이를 하다 아주 굵직한 다슬기를 보면


‘저런 놈을 잡아야 하는데...‘


하며 나도 모르게 입맛이 다셔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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