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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가

by 수쥐



나와 동생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칠 무렵 시골을 떠나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부모님이 우리를 도시로 데려가 키우시기로 한 것이다.


그게 기뻤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난 시골에서 할머니와 동생과 여선이와 지내는 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오히려 부모님은 어색했다.


그러나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우리는 이동할 뿐이었다. 시골을 떠나는 게 정해졌을 때 할머니보다도 먼저 떠오른 건 여선이었다. 나와 동생은 서로 자매라도 있었지만 여선이는 혼자였다. 우리가 가면 또래 친구도 없이 혼자 있게 될 여선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안 좋았다. 여선이가 느낄 쓸쓸함이 벌써부터 내 마음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여선이는 늘 밝은 친구였다. 큰 쌍꺼풀진 눈에 동그란 이마, 까무잡잡한 피부가 활기찬 성격과 잘 어울렸다. 지치지도 않고 까불거리다 삐지기도 하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는 그야말로 말괄량이였다.


내가 이야기를 했을 때 여선이는 이미 마을 어른들을 통해 건너 건너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평소보다 차분한 표정과 말투였지만 생각보다 덤덤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언듯 언듯 비치는 속상함을 나는 애써 못 본 척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 ‘방학 때마다 올 거야! 할머니가 계시니까 계속 올 거야 ‘


내 말이 별 효과는 없었다. 여선이와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꼭 방학 때마다 볼 것을 상기하며 작별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려 했다.


이후 생각보다 빠르게 도시로 가게 되었고, 내가 떠나는 날 마지막으로 여선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여선이는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건 철제 필통과 사진이었다. 그 넓적한 검은색 철제 필통은 여선이 것이었다. 내가 예전에 보고 마음에 들어 다른 것과 바꾸자고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필통은 여선이도 아끼는 것이어서 단호한 태도로 거절했다. 여지가 없는 태도에 난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끼던 필통을 나에게 내어준 것이다. 여선이는 평소에 무엇이든 욕심이 있어서 자기 것을 주는 것보다 남에게 받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런 여선이가 자기가 아끼는 걸 나에게 주다니... 마음이 먹먹했다. 9살 인생을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었다. 마음속에서 파동이 돌멩이를 던진 듯 퍼져나갔다.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 안엔 사진이 한 장 들어있었다. 세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선이를 찍은 사진이었다. 5~6살 무렵부터 함께 다닌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가 아닌 더 어렸을 때의 여선이를 보니 낯설고 신기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진은 무한으로 복사하고 전달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한 장의 사진은 단 한 장씩만 존재하는 종이였다. 똘똘하고 예쁘게 나온 이 사진이 여선이가 아끼는 사진일까... 모든 사진은 딱 한 장뿐인데 이제 이 사진은 이 세상에서 나만 가진 사진이었다.


여선이는 그렇게 특별하고 소중한 선물을 나에게 주었다. 자기를 잊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있었을 것이다. 나는 시골을 떠나게 되기로 정해졌을 때부터 여선이를 잊을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해 왔다. 나의 처음이자 가장 오래된 친구인 여선이는 나에게도 소중한 존재였다.


그렇게 여선이의 선물을 소중히 챙겨 나와 동생은 우리의 집이자 마을이었던 시골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이 흘러...


우리는 방학이 되자 냉큼 시골로 향했다. 시골은 전부 그대로였다. 여선이도, 할머니도, 마을도 전부 변함없었다. 여선이를 만나는 것은 1순위의 필수코스였고(할머니와는 집에서 만나니 논외다.) 매 방학마다 우리의 우정은 쭉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상하게도 떨어져 있으니 여선이의 지치지도 않는 장난과 까불거림이 견딜만해졌달까...? 가끔은 짜증을 유발하곤 했던 여선이의 그런 모습마저 적당한 주기를 가지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오히려 더 돈독해져 가는 우정을 쌓으며 나와 여선이는 서로가 어디 있든 개의치 않는 친구가 되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한 번도 같은 시/도에서조차 산 적이 없지만 언제나 내 첫 친구이자 가장 추억 많은 친구로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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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이가 준 사진/아직도 가지고 있는 철제 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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