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청소년이 된 수쥐와 여선
나와 동생이 서울로 상경 아닌 상경을 하고 난 뒤에도 시간은 제 역할을 하며 흘러갔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도 방학이 되면 시골로 향하는 것은 여전한 관례였다.
그리고 이번엔 여선이가 색다른 제안을 했다. 옥수수를 함께 팔아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은 일단 해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흥미가 돋는 이야기였는데 자세한 건 이랬다. 여선이 아버지가 수확한 옥수수가 몇 자루 있는데 여선이가 그 옥수수를 팔면 그 돈을 여선이가 가지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가 시골에 내려간 시점에 넉살 좋고 수완 좋은 여선이는 이미 옥수수를 거의 다 팔고 마지막으로 하루 장사를 남겨놓고 있었다.
나는 일찍이 초등학생 시절 직접 잡은 다슬기를 장터에서 팔려고 했으나 당일에 늦잠을 자서 사실상 할머니와 동생에게 물건만 조달한 셈이 되었던 경험이 있었다. 이번엔 진짜 면대면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니 어떤 느낌일까 긴장되기도 기대되기도 했다.
이번 장사 장소는 장터가 아니라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는 읍내였다. 읍내 도로 옆 한적한 공터에 자리를 잡았는데 나는 장사가 될까 싶은 의문도 들었다. 삶은 옥수수도 아니고 갓 수확한 농작물 상태의 옥수수를 시골사람들이 자루씩이나 사가려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타고난 장사꾼 여선이의 타겟층은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들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정말 장사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서서 옥수수를 양손에 들고 휘저으며 열심히 눈길을 끌으면 지나가던 자동차가 정차하더니 한 자루씩 사가는 것이다. 고객 중엔 여선이가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선이가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 물류 기사님도 있었고 이미 옥수수를 사간 적 있는 안면을 튼 사람도 있었다. 여선이는 쌍꺼풀 진한 커다란 눈을 빛내며 싹싹하게 인사를 건네었다. 조그만 체구에도 지치지도 않는지 늘 까불거리는 친구였던 여선이가 제법 멋져 보이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쩐지 낯선 여선이의 모습을 구경하기 바빴고 여선이의 말동무 역할을 하며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그래도 여선사장님은 중국집으로 식사를 제공해 주셨고 우리는 맛있게 해치운 뒤 벌써 얼마 남지 않은 옥수수를 전부 팔고야 말았다!
아직도 해가 밝은 낮에 옥수수를 매진시키고 나니 말동무 역할이었던 나조차도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나였다면 혼자서는 할 엄두가 안 났을 것이다. 며칠간을 이렇게 혼자 옥수수를 팔았다는 여선이를 생각하니 자꾸만 오늘따라 꽤 멋져 보이는 것이었다. 맨바닥에서 옥수수를 매진시키는 고등학생이라니... 여선이는 참 씩씩하구나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동갑인데도 나는 주도하고 잔소리하는 역할을, 여선이는 따라오고 잔소리 듣는 역할을 했었는데 어느샌가부터 여선은 나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돌아보면 끝없는 추억을 얘기할 수 있는 친구까지 시골은 나에게 주었다.
작은 시골 마을이 나에게 참 주는 것이 많다고 느끼며 이 시리즈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