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는 일요인간
커피 머신을 켜고 원두를 옮겨담고 실외등을 켜고 순번없는 일을 한다.
아주 재미없는 일들인데, 왜 이렇게 좋을까. 벌써 익숙해져 버렸나.
익숙해지면 소중해지는데.
그게 사람이든, 이웃집 강아지든. 자주 쓰는 볼펜이든. 일기를 쓰는 습관이든.
반복적인 작업은 정이 들기 마련이다.
딸깍하는 소리, 의자가 끌리는 소리, 얼음이 만들어지는 소리가 뭐라고.
내 일상의 일부분이 되어 좋아진다.
먼지를 닦았다. 얼룩덜룩한 지문이 묻은 유리창도 닦고 화분에 쌓인 흙먼지도 닦았다.
닦는 일이 이렇게 재밌는 일인지 몰랐다.
유리창에 걸린 바깥 풍경이 더 선하게 보이길래. 내 마음도 쓱하고 닦아본다.
생각은 모름지기 투명하게 보이는 법이니.
글을 읽었다. 쓰기도 하고 주문도 받고 음료도 만들고.
말하기 듣기 쓰기를 좋아하던 국어 수업시간의 내가 보인다.
좋아하는 일은 생각없이 하게 된다. 아님 하고 있다.
일요인간의 생각없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