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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Jan 07. 2018

<삼삼한 이야기>그 112번째 단추

세 가지 매듭짓기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은 정리정돈이다.  

자료 서치를 할 때도 인터넷 창을 스무개 정도 금세 늘려나가고 (필요없는 사이트를 닫지 않는다) 단상을 기록할 메모장은 매일 5개 정도 만든다. 원고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최소 수정본 5개는 쓴다. 바탕화면에는 한글 파일이 너무 많아서 화면 전체를 채운 적도 있다. 이렇게 나는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정리를 시작했다. 이 지저분한 습관때문에 비효율적인 삶을 산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아무도 모르겠지. 내가 나름 정리한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단 사실을!   


첫 번째. 일주일에 대한 매듭짓기  


나는 금요일 오후쯤 되면 독이 오른다.

일하기 싫은 독이 올라 친한 사람들한테 싫증도 내고 투정도 부린다.

마음이 미워졌으니 세상을 곧이 곧대로 바라볼 수도 없다.

딱 일주일 치. 타인이 만들어준 감정적 피로감과  

스스로가 만들어낸 감정 덩어리(후회+미움+서운함)가 독처럼 쌓인다.  

주말은 일주일을 잘 매듭짓는 날이다. 오늘 아침은 짤랑짤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 소리를 들으며,

읽다만 책을 챙기고 가장 편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했다. 특히 매끄러운 문장들!  

꾸밈없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바라보면 나의 미움이나 독이 잘 녹아내린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맛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   


두 번째. 인간 관계에 대한 매듭짓기  

슬며시 떠나가는 사람도 있고 슬며시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어차피 만남과 헤어짐은 내 허락을 받을 일이 아닌데, 매번 작은 동요가 일어난다.  

그래서 떠나가는 이에게 작은 매듭을 짓고 있다.

이 매듭이 없으면 난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을 테니까.

다시 만나는 날에 스르르 풀려버릴 매듭 짓기.


세 번째. 자료에 대한 매듭짓기

다음주까지 외장하드에 모든 자료를 정리하기로 했다.

3일 전부터 시작한 자료 정리는 끝이 보이질 않는다.

대학교 때 산 노트북인데, 한번도 파일 정리를 해본 적이 없다.

문서를 하나씩 확인하고 지우는 중인데.

어떤 건 비밀번호가 걸려있었고 메모장에는 또 이상한 글이 가득하다.

또 친구들의 과제 파일까지.

지금보다 더 못쓴 글들을 보니 피식피식 웃음이 샜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글, 은사님이 주셨던 편지들을 발견해서 다시 저장해놓았다.  

더 자주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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