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 마디, 마디
말 한 마디에 사람 마음을 살 수 있다.
매일 나는 여러 사람에게 마음이 팔린다.
#1.
오늘 오후에 날 풀린다는데, 꽁꽁 싸매고 나왔네.
제가 일기예보를 잘 안봐서요.
그거 다 짐 될 거야. 껄껄.
종종 만나는 유쾌한 택시기사 아저씨는 꿀꿀한 기분을 수면 위로 살짝 올려준다.
#2.
카이가 표지모델해서 많이 팔렸다면서요.
엄청 팔렸어요. 근데 카이가 누군지 모르는데, 자꾸 물어봐.
저도 잘 몰라요. 카이 말고 이걸로 살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는데, 어깨 너머로 빅이슈 판매원들은 감사합니다를 여러 번 외친다.
외려 내가 감사하다. 그들의 친절함이 내 마음을 사버렸으니까.
늘 오고가며 태연하게 말 한마디를 붙이고 빅이슈를 산다. 좋아서. 어쩔 수 없이.
오늘 오전은 빅이슈 완독.
#3.
사소한 책이 나와 한 권 보내려고 하니 주소를 알려주세요. 추운 날씨, 건강하길 빕니다.
메일 제목만 봐도 설레는 사람이 있다.
나의 은사님은 오래 전부터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말씨와 글로 내 마음을 사버린 사람이다.
마음이 작아질 때마다 그녀가 해준 한 마디, 마디가 생각난다.
사랑하는 이의 말은 움츠려든 이의 등 뒤로 서있는 푸르고 푸른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