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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Jan 20. 2018

<삼삼한 이야기>그 118번째 단추

보고 싶은 너, 소피 

여러가지 감정 중에 '보고픔'이, 가장 다스리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화가나고 슬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지는데, 보고픔은 시간과는 거꾸로 흘러 커지기만 한다.  

외장하드에 사진을 옮기다 새까맣게 잊고 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5주동안 호주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집 꼬마 아이, 소피.    

말괄량이라 말도 안듣고. 영어로 말도 안통했던 4살짜리 아이가 보고싶다.   


#1. 내가 기억하는 소피는


인형같이 이쁘게 생겼고 활동적이었다. 

나이 많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에 반해 오빠는 컴퓨터 게임을 자주 해서 혼났다. 

매일을 놀아달라며, 내 방에 찾아왔다. 

어린아이 특유의 이상한 영어발음과 추임새로 나를 당황시켰다. 

어느 날은 자기를 프린세스라고 불러주지 않았다고 소리를 지르고 나갔다. 

그녀의 일상 대부분은 디즈니 공주역할극에 해당한다. 

너무 귀여운 아이였고 떼를 쓰면 초콜릿으로 타협이 가능했다.   

집안에서는 그렇게 까불더니, 어린이집에서는 조용한 숙녀가 되었다.


나의 침대. 그녀의 놀이터
재롱


#2.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은


하루종일 놀아달라고 징징대던 소피는 종종 나를 화나게 했다. 

우린 자주 싸웠고 큰소리로 울던 소피가 매번 이겼다.   

그리고 소피는 내가 떠날 때, 가장 많이 울었다. 

그 애 나랑 같이 살면 안돼?는 말을 반복했다.


난 한국에 가족이 있어서 돌아가야해. 꼭 다시 올게, 소피. (내가 했던 마지막 말)  

   

홈스테이 가족 모두,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진한 포옹을 해주었고 

홈맘은 종이 귀퉁이를 찢어 메일주소를 적어주었다. 


꼭 연락해, 아만다. 


한국에 돌아와 제일 먼저, 소피의 사진을 첨부해 메일을 보냈다. 

소피는 여전히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하는지, 브래드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하는지...(난 다시 호주에 갈 일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잘 지내라고. 

ㅎㅎ


그거 내 신발이야
모르는 척 하기도 힘든 숨바꼭질


#3. 내가 기억하는 호주는


여름이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 

뜨거운 태양이 정수리를 태우고 다큐멘터리에 나올 법한 자연이 흔해 빠진 풍경이었다. 

시내에는 멋드러진 건축물과 힙한 가게들이 널렸고.

요일마다 다른 종류의 스테이크를 할인했기 때문에 오천원에 기름진 한끼 식사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것들에 취하는 순간부터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매일이 행복하진 않았다. 보이는 건 정말 일시적이었으므로.

스테이크도 질려버렸고, 눈 앞에 놓인 으리으리한 풍경들이 마음 깊이 다가오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삶이 일상이 되어야만 소소한 행복을 느꼈을 나였다.

동네 스테이크집이 3년 단골이고, 주방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괜히 호주에서의 삶을 상상해본다.  


호주 폴더에 있는 모든 사진을 훑어봤지만, 그중 내 게으른 오후를 함께 보냈던 소피가 가장 보고싶다. 

다행히 소피에 대한 몇몇 단상과 사진이 남아있어 이 글을쓴다. 

3년 전의 기억이 날아가지 않게 뭐라도 끄적여준 내 자신에게 고맙다. 


내가 지냈던 집
하늘에게



사람은 기억이라는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이 된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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