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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늘 Jan 27. 2018

<삼삼한 이야기>그 121번째 단추

ㄱ,ㅡ,ㄹ


좋은 글은 조금조금 뜯어 먹는다.

한 어절씩, 한 단어씩, 한 음절씩. 

이건 싱거운 하루를 채워준 오늘의 ㄱ,ㅡ,ㄹ! 


하나.


색 안경을 잃어버린 지 보름이 다 되어갑니다.

안경 덕에 올려다보던 하늘, 이젠 눈이 부셔서 보지 못합니다.

새 안경을 사라고들 하지만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인연은 소중한 것, 헤어졌다고 금방

다른 사람이나 물건에게로 마음을 옮기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요. 


둘.


불멸의 새가 울다


언어의 새들이

붉은 심장 속에 둥지를 틀다

관념의 깃털을 뽑아 깔고

그 위에 씨알을 품었다


쓸쓸한 귀를 열고

이름 없는 시인의 가슴으로 들어간 밤

어지러운 선잠에 들려올려지는 새벽,

어디선가는 푸른 환청이 들렸다


꽃-피-요 꽃-피-요


셋.


시는 아름답다고?


꽃을 꽃답게 쓰면 이미 꽃이 아니라고

나비를 나비답게 쓰면 이미 나비는 죽은 것이라고

투미한 잔소리들이 성가시게 몰려들었다

꽃에게 물었다 어떻게 피는가 

나비에게 물었다 어떻게 나는가

그들은 내게 물었다 넌 왜 사는가

우멍거지의 귀가 부끄러웠다

심장에 알러지가 꼼지락거렸다 붉고 더 붉게

봄이야 소리 내어 부르면 가려웠다, 몹시

한권의 꽃들이

한권의 나비들이

한권의 빗물이

그리고 또 한권의 바람이 휘잉

접힌 돌확 속으로 말려들어 갔다

사월 내내 잎새들이 가지를 흔들어댔다

꽃샘이 뿌리에 담금질을 해대었다

이름의 무게를 재며 사내들은 시를 부렸고

그 앞에서 여자들은 화들짝 번들거렸다

꽃잔치에 멀미를 일으키며 달아나는 임대버스에게

술에 취한 나비들이 시덥잖게 물었다 

저 길이 뒤집어지는 이유를 아세요?

저 길 위의 시가 아름답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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