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ㅡ,ㄹ
좋은 글은 조금조금 뜯어 먹는다.
한 어절씩, 한 단어씩, 한 음절씩.
이건 싱거운 하루를 채워준 오늘의 ㄱ,ㅡ,ㄹ!
색 안경을 잃어버린 지 보름이 다 되어갑니다.
안경 덕에 올려다보던 하늘, 이젠 눈이 부셔서 보지 못합니다.
새 안경을 사라고들 하지만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인연은 소중한 것, 헤어졌다고 금방
다른 사람이나 물건에게로 마음을 옮기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요.
불멸의 새가 울다
언어의 새들이
붉은 심장 속에 둥지를 틀다
관념의 깃털을 뽑아 깔고
그 위에 씨알을 품었다
쓸쓸한 귀를 열고
이름 없는 시인의 가슴으로 들어간 밤
어지러운 선잠에 들려올려지는 새벽,
어디선가는 푸른 환청이 들렸다
꽃-피-요 꽃-피-요
시는 아름답다고?
꽃을 꽃답게 쓰면 이미 꽃이 아니라고
나비를 나비답게 쓰면 이미 나비는 죽은 것이라고
투미한 잔소리들이 성가시게 몰려들었다
꽃에게 물었다 어떻게 피는가
나비에게 물었다 어떻게 나는가
그들은 내게 물었다 넌 왜 사는가
우멍거지의 귀가 부끄러웠다
심장에 알러지가 꼼지락거렸다 붉고 더 붉게
봄이야 소리 내어 부르면 가려웠다, 몹시
한권의 꽃들이
한권의 나비들이
한권의 빗물이
그리고 또 한권의 바람이 휘잉
접힌 돌확 속으로 말려들어 갔다
사월 내내 잎새들이 가지를 흔들어댔다
꽃샘이 뿌리에 담금질을 해대었다
이름의 무게를 재며 사내들은 시를 부렸고
그 앞에서 여자들은 화들짝 번들거렸다
꽃잔치에 멀미를 일으키며 달아나는 임대버스에게
술에 취한 나비들이 시덥잖게 물었다
저 길이 뒤집어지는 이유를 아세요?
저 길 위의 시가 아름답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