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내 의지의 문제는 아니었어.
둘째가 걷고 고집이 생긴 16개월 여름. 다 같이 호캉스를 떠났다. 아이를 둘 이상 키우는 집은 대부분 공감할텐데,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이 나음에도 굳이 짐을 싸서 밖으로 나가는 건 연일 40도를 웃도는 견디기 어려운 폭염속에서 자맥질치는 호사를 나에게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잠시나마 그럴 수 있다고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박만 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에어컨을 켜니, 그래 이거다.싶다. 예상했겠지만 호사는 포기했어야 했고 실제로 그랬다. 각기 다른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한 녀석 달래 놓으면 다른 녀석이 달아올라 간신히 진정시킨 이전 놈까지 같이 신나버리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느라. 상대적으로 묵묵한 남편은 고스란히 여행의 그림자를 짊어졌다.
체크아웃을 위해 로비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직 안겨 있을 개월수의 아기와 부부의 대화를 엿들었다.
"애 데리고 어디 여행을 가는 건....아..정말 너무 힘든일이야..."
아기를 안고 있는, 체구도 꽤 듬직했던 남편의 입에서 이런 하소연이 나오자 아내가 웃으며 받아쳤다.
"왜~?하와이 가자며~~?"
둘은 같이 웃었고 나도 속으로 웃었다.
아이가 어릴수록 힘이 든다. 그래서 그 부부의 마음을 이해하고 통감할 수 있었다. 우리도 지나왔던 일이었기에.아이가 커가며 부모는 원래 누렸던 것들을 하나씩 돌려받는다. 우리도 이제 5살인 큰 아이 하나만 있었다면 아이를 재우고 늦도록 맥주를 마시며 파티를 감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수와 상관없이 부모는 막내의 시간을 따라가게 되는 법. 하루 사이에 꽤 지쳐버린 나는 그 부부에게 앞으로 닥칠 여러 일들을 상상하며 헬젤과 그레텔의 빵부스러기를 상상했다. 우리는 신의 계획에 따라 가까운 곳에 던져진 맛있어 보이는 빵부스러기를 하나씩 집어먹으며 여기까지왔고 육아라는 커다란 계획 앞에서는 더욱 선택을 할 여지를 잃었다. 자의로 걸어왔지만 거의 우연이다시피 일어난 일들 앞에서 어떤 후회도 할 수가 없다.
이미 발을 들여놓은 이 곳은 아시다시피 출구가 없다. 죽을 때까지 부모인 것이다. 알지 못했던 일들을 차차 겪으며 그간 먹어온 빵부스러기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수영장안에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과 연인, 친구사이로 온 손님들이 있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무척 여유로웠고 그들의 욕구는 즉시 충족 되었다. 반면 대부분의 부모는 목이 말라도, 화장실이 급해도 자신이 먼저가 되는 법이 없다. 아이가 둘 임에도 아직 철이 안 든 나는 맛있는 음식이 나왔을 때 하필 화장실가고 싶다는 큰 아들이 미웠다. 이런 일상은 빵부스러기의 실체 중 아주 작은 하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돈도 안내고 먼저 먹었으니 그에 대한 댓가를 치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 원부모로부터 댓가없이 받은 사랑을 대상을 바꿔 돌려주는 일. 그런 생각으로 나만 가득했던 마음의 방을 어렵게 조금씩 넓힌다. 아마 다들 비슷하겠지.
예쁜 수영복을 뽐내며 서로에게 어필하는 연인들이 부럽다가도 가족들에게 애틋한 시선이 좀 더 머무는 것은 출구 없는 덫에 빠져든 서로의 삶과 그것의 실체를 깨달아가는 일의 희노애락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기왕 들어왔고 어차피 출구가 없다면 쉬엄쉬엄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힘을 내 가시자고 눈으로 빨갛게 익은 그들의 어깨를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