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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놈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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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Apr 08. 2020

산책 중에 갑자기 다리를 절던 날

내 아이는 더이상 '강아지'가 아니었다.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가을이 시작되었구나 하고 느끼며, 초저녁 산책을 나섰다. 늘 걷던 뒷산이 아니라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골목 여기저기를 휘감아 도는 가을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디디의 목줄을 채우고 현관문을 열었다. 길었던 해가 지고 화단에는 잠자리 몇 마리가 날아다녔다. 산책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디디가 먼저 첫 발을 디뎠다. 여름 내내 푹푹 찌던 보도블럭을 밟을 수 없어 산책을 자제하던 터였다.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산책을 다니던 녀석이 여름볕이 수그러들 동안 좁아 터진 집 안에서 실내산책을 하려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디디도 가을이 반가웠지만, 산책 메이트였던 나 역시 무척이나 가을이 반가웠다.



  디디는 신이 나서 가볍게 통통 거리며 걸었다. 평소의 걸음걸이가 발발 거리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경쾌하고 밝은 느낌이었다. 녀석의 흥이 리드줄로 느껴졌다. 디디의 흥겨움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잠깐 멈춰서서 디디의 등을 톡톡 두드렸더니, 녀석이 잔뜩 웃고 있는 얼굴로 뒤돌아 봤다.




  “왜?”


  “너무 신나 보이는데.”


  “응. 가을이니까.”




  디디의 콧잔등 위로 잠자리 한 마리가 사뿐히 날아와 앉았다. 디디가 ‘켕! 키힝!’거리며 재채기를 하자 잠자리가 휙 날아가버렸다. 디디는 웃으며 길을 나섰다.





관절 건강이 양호할 때의 모습. 어느 정도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는 훌쩍 뛰어 올라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한다. 반려동물 놀이터에서 일렬로 걷는 바(Bar)를 좋아한다.





  문제는 그때부터 였다. 보통의 우리는 누군가가 앞서거나 하지 않고 나란히 걷는 편이었다. 서로를 응시하던 시선에서 멀어져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리드줄이 팽팽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란히 걷는 우리에게 있어 팽팽해진 리드줄은 뭔가 이상이 있다는 신호였다. 내 옆을 내려다보니 디디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디디가 왼쪽 앞다리를 들고 가만히 서있었다.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깽깽이를 짚고 있었다.




  “디디! 괜찮아?”




  너무 놀라 디디의 앞다리를 잡으니, 녀석이 워낙 발을 잡는건 싫어하는 편이라 그런지 앞발을 내 손에서 쏙 빼버렸다.




  “지금 좋고 안좋고 따질 때가 아니잖아. 다쳤으면서 왜 그래?”




  디디는 나의 손을 피하며 앞발을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자기 갈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픈 기색없이 똑바로 걷기 시작하며 리드줄을 당겼다.




  “빨리 가자니까!”


  “너 아픈거 아니었어?”


  “아냐, 어서 가자.”




  리드줄을 천천히 풀어가면서 디디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디디는 내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가만히 기다리다가 총총대며 가볍게 걸었다.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디디의 이상행동이 의심스러워 디디의 앞 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 간 걷기 시작한 지 5분이나 지났을까? 디디가 다리를 절룩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분명했다. 손에 잡은 리드줄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분명했다. 디디는 이제 걷지 못하고 멈춰 서서 아까 절룩댄 그 앞발을 들고 있었다. 그러고선 나를 올려다 봤다.




  “아파.”







  나는 디디를 안고 곧장 동물병원으로 뛰어갔다. 집 주변에서부터 동물병원까지 걸어서 20분 남짓. 20분의 시간도 길게 느껴졌다. 나는 무조건 뛰어야 했다. 디디가 품 속에서 앞발을 굽히지도, 펴지도 못하고 있었다. 디디의 발이 흔들려서 고통스럽지 않게 살짝 눌러서 고정시켰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지만 호흡의 고통보다 디디의 고통이 더 느껴지는 듯 했다. 그렇게 달리기를 5분, 10분…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 되어 미친여자처럼 뛰었다.




  “선생님!”




  소리치며 병원문을 열었다. 진료실에 앉아있던 수의사 선생님이 놀란 표정으로 나오셨다.




  “디디가! 디디가… 아파요…”




  나도 모르게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선생님이 테크니션 선생님에게 검사 준비를 요청하셨다. 테크니션 선생님께 디디를 조심스레 안겨 드렸다. 디디는 곧 검사실로 들어갔다. 나는 병원 로비를 왔다갔다거리며 애먼 손가락만 물어 뜯었다. 제발 무사하기를…








  “디디 보호자님, 들어오세요.”




  진료실을 들어가니 디디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얌전히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빙긋 웃으시면서 입을 열었다.




  “디디 보호자님, 걱정하셨죠?”


  “선생님, 디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설마 죽을병 걸린건 아니죠? 아침까지만 해도 건강했는데…”


  “에이, 아직 디디가 살 날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그렇죠? 그런거죠?”


  “디디가 아픈 이유가 있었네요.”


  “이유가 뭐예요?”


  “나이가 들어서 다리가 빠졌어요.”


  “네?”


  “사람도 팔이 빠지는 것처럼 아이들도 탈구 증상이 있을 수 있어요. 디디가 지금까지 그런 증상은 없었는데… 아마 나이가 들면서 관절이 약해지니까 갑자기 안걷다가 걸으면서 앞 다리 부분이 빠진 것 같아요. 이렇게 다리를 맞춰주면…”




  선생님이 앞다리 사이의 겨드랑이에 엄지 손가락을 넣고, 네 손가락으로는 다리 바깥쪽을 감싸안았다. 그리고는 몸쪽으로 팔을 살짝 끌어당기더니 앞다리를 위 아래로 천천히 움직여 보였다.




  “다 됐습니다. X레이 결과도 깨끗했고 다리 빠진 것 말고는 이상이 없어요. 한 번 탈구된 자리는 재발할 위험이 있으니, 며칠 동안 잘 지켜보세요. 무리해서 산책시키지는 마시구요. 나이가 12살이니 관절에 무리가 가면 나중에 치료가 힘들어질 수 있어요.”




  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디디의 등에 얼굴을 부볐다. 디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 품을 벗어나려 애썼다.





내가 외출하거나 자리를 비웠을 때,  꼭 이렇게 의자 위로 올라와 기다린다. 지금은 엄두도 못내지만 한 번에 점프해서 올라가곤 했었다. 그녀가 제공한 소소한 이벤트였다.







  디디를 안고 돌아오는 길에 정말 무사한가 싶어 잠깐 바닥에 내려놔 보았다. 보도블럭을 씩씩하게 걷는 모습이 의아했다. 방금 전까지 아픈 개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총총 거리며 걷는 뒷모습에 나도 모를 안도감과 불안감이 드리워졌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렇게 함께 걷는 날이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나는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앞서가던 디디가 당겨진 리드줄 때문에 뒤돌아 왔다. 가까이 다가온 디디의 얼굴을 쓰담아주었다. 디디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으니 턱 아래에 주름이 보였다. 눈도 까맣지 않고 조금 뿌연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개의 늙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개의 늙음 앞에, 그녀의 짧은 수명 앞에, 정해진 시간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있다면 하고 바라는 것 밖에 없었다. 한 생명을 향한 작은 소원은 염원이 되었다. 이별을 준비하는 순간까지 기도하는 것, 기도하며 그녀의 흔적을 써서 남기는 것. 그 두 가지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나의 작은 생명을 위한 기도와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신이 내게 맡겨주신 이 작은 생명을 사랑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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