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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놈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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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태연 Jun 25. 2020

개의 입술에 무엇이 잡혔다.

미친듯이 구글링하며 병명을 찾아다녔다.

  그러니까 지금은 디디가 많이 아픈 상태이다. 아픈데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그런 아픈 상태이다. 얼마 전부터 디디의 입에서 꼬랑내가 났다. 디디가 하품을 하려고 입을 쫙 벌렸을 때, 입에서 오징어 쩐내가 났다. "끄아악- 냄새!"하고 외치는 찰나에 디디는 자기 좋다는 소리인 줄 알고 혀로 팔뚝을 핥았다. 팔뚝에서 이 녀석의 입냄새가 잔뜩 배었다.


  안되겠다 싶어서 어금니칫솔과 치약을 들고 비장하게 디디 앞에 앉았다.




  20살이 된 할매견의 양치질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전에 없던 똥고집이 매우 심해졌기 때문에, 단순히 고개를 돌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입질과 뒤로 점프하기, 회피, 꼬리로 탁탁치기 등등 여러 가지 방어전이 이어진다. 거칠게 아이를 잡아 헤드락하듯이 고개를 치켜올리면 100% 나쁜 기억을 심어주어 다음 양치질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최대한 너그럽고 신사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디디야, 양치하자~"



  라고 디디에게 다가가면 이미 눈치를 채고 고개를 휙 돌린다. 개를 기르는 것은 개의 귀여운 모습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의 싸가지 없는 모습까지도 살살 구슬려 서로에게 좋은 모습으로 훈육해야 한다. 칫솔에 치약을 소량 묻혀서 입 가까이에 들이대니 고기향에 속아서 핥짝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좋은 기억이 살아났다. 그래, 칫솔질은 고기맛 나고 물컹거리는 뭔가를 입에 바르는 행위이다! 계속 먹어라, 디디. 이제는 디디의 옆구리에 내 몸통을 가까이 붙이고 윗 입술 양 옆을 쭈욱 위로 들어보인다. 디디는 '아- 속았구나.'하는 기분으로 벗어나려 하지만, 재빠르게 칫솔이 잇몸 사이로 삽입된다. 치카치카- 양치를 끝낸 디디가 팽팽 거리는 콧소리를 내며 진저리를 낸다.


  이번에도 디디의 양치를 시도했다. 디디의 양쪽 잇몸을 들어냈을 때였다.



  "이게 뭐야?"


  

  디디의 왼쪽 입술에 이상한 물집이 잡혀 있었다. 칫솔로 살살 건드려보니 별로 아파하는 기색이 없었다. 벌레에 물린 후유증으로 생긴 알들처럼 동글동글한 물질들이 아랫입술과 윗입술 사이에 대롱대롱 맺혀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아이의 입술을 사진찍어 가족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가족들도 무척이나 놀랐다. 오늘은 동물병원 운영시간이 지났으므로 내일 아침에 전화해서 진료 예약을 잡기로 했다.


디디의 입술에 포도알처럼 맺힌 동글뱅이들




  "선생님, 애가 이상한게 났는데요."


  "잠깐 볼까요? 흐음... 이건 종양 같은데요."


  "네에? 종양이요?"


  "네. 피부염증은 아니고 종양 같습니다. 악성인지 아닌지는 일단 항생제 처방해서 먹어보고 종양상태가 커지면 정밀검사를 통해 판별하도록 하지요. 그런데 아이가 나이가 있어서... 항생제로도 줄어들지 않으면 검사하고서 수술을 해야 할텐데... 아무래도 위험할까봐..."


  "선생님, 그러면 약만 일단 먹여보고 수술을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할게요."



  아이의 입술에 난 것이 단순한 염증이 아니라 종양이라는 판명에 충격을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 한참을 구글링했다. 강아지 입술 포진, 강아지 입술 종양, 강아지 종양, 입술 종양 등등. 아이의 증상을 검색하니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서 온몸의 근육들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정말 아이의 마지막날이 머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그동안 마지막날에 덤덤했던 마음들이 흐물흐물 녹아 내렸다.


  일주일 동안 항생제를 먹으며 칫솔질을 하지 않았다. 오징어 입냄새는 여전했지만 설사 종양을 건드려서 피가 뚝뚝 흐르거나 진물이 날까봐 겁이 났다. 일주일 후,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흐음. 종양이 줄어들지도 않고 커지지도 않았네요. 한번 계속 지켜보시고 커지면 그때는... 수술을 하도록 합시다."


  "선생님... 그냥 약을 계속 먹는 방법은 없을까요?"


  "항생제를 먹는것도 아이 몸에 부담스러우니까 여기까지만 먹이셔야 해요. 이 이상은 아이에게 무리입니다. 계속 관찰해주시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진료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칫솔에 치약을 묻혔다. 그동안 밀렸던 칫솔질을 하면서 종양이 생긴 부분은 손목에 힘을 잔뜩 뺐다. 아이는 별로 아파하지 않았지만 이물감에 불편해하는 눈치였다. 칫솔질을 끝내고 동물병원에서 진료한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생각하지 못한 위기상황에 멍하고 허공을 바라보고 앉았다. 디디의 철없는 팽팽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디디가 종양제거 수술을 하더라도 20살의 고령 때문에 마취 후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고, 수술 중에 의료사고로 죽을 수도 있다. 하다못해 수술 후 합병증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생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의 입에 생긴 좁쌀만한 종양이 아이의 생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의 얼굴로 다가왔다.


  아직 디디의 입술에는 종양이 숨겨져 있다. 종양은 커지지 않고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다. 그냥 커지지 않고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그대로만 있었으면 좋겠다. 줄어드면 더 좋겠지만은 일단 현상유지만 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감사할 것이다. 디디의 견생에, 말년에, 무시무시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제발, 운명이여. 늙고 작은 개의 손을 들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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