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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입구 현판에는 삼일문이라고 한글로 쓰여 있다. 독립선언 낭독이 있었던 곳이기에 그렇게 작명했을 거라고 추정된다. 안을 둘러보았는데 생각만큼 넓지 않았고 단출했다. 선입견이 있었지만 공원 관리인들의 노고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유리로 된 보호대 안에 서있다. 손병희 선생 동상이 있고 벽면에 부조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독립만세 운동과 관련된 의미 있는 장소지만 현재 모습은 아쉽다. 우선 공원 명칭이 그렇다. 나만 그런가? 뼈 “골”을 연상케 하는 단어가 들어가다 보니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내 생각엔 최초 설립자 영국인이 작명한 “파고다 공원"이 더 나아 보인다. 가급적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이 명칭을 채택한다 해도 외래어 남용 문제와는 결이 다르다고 본다. 아니면 골을 고을로 바꾼 ‘탑 고을 공원’이란 명칭은 어떨까?'
오전 10시경인데도 상당수의 노인들이 여기저기 앉아있다. 사람 사귀는 재주가 없고 말 수가 적은 사람들이 공원시설 안에 있는 듯하고, 그나마 목소리 크고 몸이 성한 사람들이 외곽 담벼락을 따라 포진해 있다. 그들은 장기와 바둑을 두고 취식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무료급식을 하는 장소가 몇 군데 보였다. 자선을 베푸는 단체의 노고는 아무리 치하해도 모자라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줄곧 출마하는 분의 현수막도 보인다. 이곳에서의 무료급식에 힘을 보태는 모양이다. 어느 유권자가 이 후보자에게 힘을 실어주나 하고 항상 궁금했는데, 아하!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곳이 어떻게 노인들의 대표적 쉼터가 되었을까? 요즘 젊은이들이 홍대, 이태원, 강남 등에 열광하듯이 장년층은 종로일대가 그들의 성지였다. 나 자신도 청년시절 <종로서적> 앞을 매번 약속 장소로 했다. 극장가와 뒷골목 식당들은 아련한 추억을 많이 선사해 준 곳이다.
현재, 지하철 종로3가역은 각지에서 모일 수 있는 교통 요지다. 아쉽다면 공원일대의 이미지는 양호하지 않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장소가 빛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나 자신도 초로의 노인이 되어 가지만 패거리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까지 지지할 수는 없다.
공원 앞 도로 맞은편은 여유 있는 노인들의 집합소라고 한다. “국일관”도 보이는데 그곳은 장년 세대들의 해방구였다. 수개월치 용돈을 모아봐야 하룻밤 사이에 모래에서 물 사라지듯 하게 했다. 무질서한 듯했지만 당시 청춘남녀들은 현란한 춤과 맥주잔 속으로 첨벙 빠져들었던 곳이다.
누구나 늙음 앞에 서게 되고, 두 가지 갈림길이 놓여 있다. ‘힘든 길로 갈지, 여유 있는 길로 갈지 말이다.’ 자식에게 돌봄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자식에게 어느 선까지 경제적인 지원을 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균형의 추가 자식 쪽으로 기울면 힘든 노후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