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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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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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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롱이, 참새, 뻐꾸기와 뱁새 : 출처 네이버 이미지)


우리 마을 뒷산엔 노회 한 솔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혼탁한 조류계를 정화시키고자 거사를 일으켰다고 들었다. 일부 새들은 자발적으로 전위대 역할을 자처했고 다른 새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보스에게 복종했다. 제왕의 자리를 영구히 구축하려 했으나 도전자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법, 연회를 즐기다가 심복 새의 변심으로 세상을 떠났다. 솔개 자녀들의 슬픔은 길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줄기 희망이 있었는데 세상을 떠난 솔개의 추종자들이 똘똘 뭉쳐 힘을 키웠다.


와신상담의 노력 끝에 솔개의 맏이(이하 '황조롱이'로 부른다)가 창공의 결투 끝에 비둘기의 도전을 물리치고 권좌에 올랐다. 처음엔, 천자문만 외는 서생들과는 달리 실사구시를 중요시하는 이공계 출신이라고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신선함은 오래갈 수 없었다. 성장기부터 구중궁궐 가장 호화스러운 둥지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거친 세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개인교습을 해 줄 검증된 스승이 필요했는데 '밤에만 활동하는 그림자 새'를 사부로 기용하는 바람에 그만 사달이 나고 말았다. 비선실세란 말이 대자보에 도배되기 시작했고 마을의 온갖 새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지도자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것이다. 일전에 목숨을 건 결투에서 패배한 바 있던 비둘기는 “블루문”이라 칭하면서 올리브 잎을 물고서 앞장서고, 뒤따르는 새들은 부리에 촛불을 물고 온 마을을 뒤덮었다.


솔개만큼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의 역할 쯤은 하리라 기대했던 새들은 실망한 나머지 당장 보금자리를 떠날 것을 요구했다. 워낙 급박했던 터라 다음 권좌 게임에 내보낼 마땅한 새가 없었다. 앵그리버드로 불리는 개성파가 대항마로 나섰지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비둘기는 부리에 너무 힘을 주어 이까지 상했지만 새로운 보스로 등극했고,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에 감성적인 언행으로 인기를 모았다.


초기엔 날아다니는 곳마다 화제를 뿌렸다. 철조망 너머 새들과는 앞으로 싸우지 말고 지내자는 성과도 올렸다. 어느 날 날개 달린 것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조류독감(사피엔스에게 발견되었으면 우리는 전부 살처분당했을 것이다)이 삽시간에 퍼졌다. 비행금지를 시키고 좁은 둥지에 박혀있으라고 했다. 스스로 땅을 파 먹이를 찾아야 했던 개체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그래도 대의를 위해 참았고 물 건너 이웃들은 우리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먹이주도 성장'이라는 이상한 말도 나왔다.


온 세상이 일을 할 수 없어 곡소리 나는 중인데 도저히 어울려 보이지 않은 정책이었음에도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거기다가 '둥지가격'은 자고 나면 올랐다. 모든 새들이 지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함께 촛불을 들었던 뱁새(오목눈이)들이 파란 기와로 지어진 둥지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을 심산이었던 것이다. 비둘기는 고심 끝에 전리품을 나누기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아무 데나 들쑤시고 다녀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환경을 우선하자는 노력은 가상했으나, 태양열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든다나? 하면서 인허가 과정을 통해 비리를 양산했다.


마을이 커지자 일부 뱁새들을 한양, 부산, 충청지역에 식솔을 딸려 내려 보냈더니 조강지처는 내팽개치고 젊은 이성 새들 꽁무니만 쫒다가 피해 새들의 “미 투” 운동으로 고공비행 중 모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관악 마을 서당에서 글만 읽던 훈장에게 벼슬을 주었더니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일반 새들의 사회통념을 이해 나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위법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다른 새들은 아무 문제없었는데 왜 우리 가족만 가지고 그러느냐”는 태도를 보였다. 무리를 지은 새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시간을 보낸 비둘기는 어느덧 둥지를 비울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후계자를 뱁새 중에서 골라야 했다. 최종 낙점된 뱁새는 천신만고 끝에 자수성가한 사이다라고 불리는 새였다. 한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형수 새에게 육두문자를 날린 이력이 새들 사이에 쫙 퍼져 있었다. 유교전통이 몸에 밴 나이 든 새들에게는 용서가 될 수 없는 만행이었다.


뱁새들은 또 다른 잠룡(뻐꾸기)을 본의 아니게 기르고 있었다. 뻐꾸기는 황조롱이를 새장에 가두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런 공로로 동기 새들보다 처음엔 많이 뒤처져 있었으나, 성웅으로 불리는 조선시대 유명한 장수 새(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불멸의 새)처럼 초고속 승진을 했다. 문제는 뱁새가 직접 낳은 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처음엔 탁란(托卵)인지 몰랐다. 어느 날 뻐꾸기가 “본 새는 특정 새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오직 새 조직에 충성할 따름입니다.”라는 명언을 남기자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뱁새들이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조치가 필요했다. 거의 다 자란 뻐꾸기를 서둘러 둥지 밖으로 밀쳐내자 높은 나무에서 뻐꾹뻐꾹하며 원격 조정하던 어미와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던 무리가 잽싸게 낚아 채 갔다. 여러 새들은 "비둘기 시대"에 염증이 났던 터라 새끼 뻐꾸기에게 관심 반 호기심 반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남의 새끼 키우는 일을, 물 건너 먼 나라 영국이라는 마을에 살던 “도킨스” 라 불리는 새는<<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목구멍이 빨갛고 큰 입을 쩍쩍 벌리는 괴물에게 홀린 양부모”라고 비유했듯이 불쌍한 뱁새들은 대책 없이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


또다시 결투가 벌어졌다. 결과는 박빙이었지만 이런저런 풍문에 시달린 적자(嫡子)는 패했고 남의 둥지에서 살을 찌운 불청객이 둥지를 채갔다. 가진 게 많은 새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마을 건너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중국이라는 큰 마을에 살던 새 한 마리는 장사를 하는 왕서방의 후예인데 “레이쥔”이라고 했다. 숱한 옛 새들이 하지 못한 그럴싸한 말을 남겼다. 우리 동네에 뻐꾸기 출현을 예견이라도 하는 것 같아 모든 새가 크게 웃었다. “태풍의 길목에 서라! 돼지도 하늘로 날을 수 있다.”


축하를 위해 온갖 새들이 모여들었다. 옛 둥지는 과감히 문을 닫고 곁에 큰 물이 흐르는 '용들이 사는 산이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모두 열광했다. 올려치기 기술도 수준급이다. 짝사랑도 잠시, 요즘 새들은 뻐꾸기의 지도력에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다. 주위에 큰 독수리가 셋이 있는데 가장 멀리 있는 독수리만 편애하고, 두 독수리와는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긴 역사에 걸쳐 수시로 우리 마을의 둥지와 새 가족을 도륙했던 중독수리의 과오를 모든 새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과오를 한방에 덮어 주었다. 또한 아랫마을에서 새들의 "경제잔치"를 개최하겠다고 백방으로 비행했지만 결과는 쓰라렸다.


여기저기서 재잘거리며 항의를 하지만 요지부동이다. 철조망 너머 새들에게 까불면 원점타격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무서운 매들이 눈을 부라린다. 비둘기 정권의 실정이 워낙 깊다 보니 우매한 새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다. 어떻든 자신들의 날갯짓으로 대장을 뽑았으니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발적으로 뽑고 나서 남 탓하는 자세는 옳지 않다. 용이 노니는 산 근처에 근거지를 둔 새들의 사심 없는 분발이 필요하다. 마을의 새들은 평화롭고 배부르고 등 따시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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