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만 터는 놈들을 위한 辯

by 디딤돌

국군 대전 병원장이 군의관 후보생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입만 터는 문과 놈들”이란 말을 했다. 사심 없는 충정에서 나온 말이었기를 희망한다. 강연 내용 중 “수천 년 이어진 조선의 DNA”란 비하 표현 등은 국민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심기가 편하지 않다. 나아가 의정대립이 심화하던 와중에 “조선 놈은 더 죽어야 정신 차린다.”는 말을 후배 의사가 했다. 내 눈엔 의사들 스스로 선민의식이 있어 보인다. 조선이란 표현을 즐겨하는 걸 보니 그렇다. 하긴 조선시대에는 의례적이긴 했지만, 왕이 죽으면 허준처럼 의료수장이 귀양을 가는 불편한 연기를 해야만 했으니 불만이 계승되었을 수도 있겠다.


의사들 입에서 나오는 여러 말들이 일반인의 귀에는 기득권들의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의료소송 빈발, 저수가, 근무여건 등으로 의사의 길이 험난하기만 하다면 어린이 의대반이 왜 있는지를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는 의료계에서 특정대학 출신들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 고령의사들의 꼰대 짓, 공무원의 “갑질”들을 비난했다. 앞의 두 가지 고질적인 문제는 의료계 내부 문제로서 국민과는 직접관계가 없고 의료계 스스로 자정해야 할 영역으로 보인다. 한편 필수진료과목 지원 회피는 의사지망생들이 하는 것이지 국가나 국민이 하는 게 아니다. 시장원리에 따라 의사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적극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의료의 공공성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정책에 관해 전문성이나 현장감이 떨어지는 공무원의 관여에 대한 부분은 양면성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괴이한 고정관념이 있다. 이과 출신들은 대체적으로 자신만의 소신이 강하다는 편견이 있다. 이는 곧 융통성이 없고 인문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다. 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의대 출신 정치인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적임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의 지난 행적을 보면 포용, 소통, 배려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과출신은 억울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끼리끼리의 문제점 극복을 위해 복지부 역시 경영, 행정 등 인문학과 출신이 함께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이과생들은 실용 중시, 과학적 사고는 뛰어나지만 사람 간의 융합, 조화로운 관계 등에서는 관심이 덜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둘 다 잘하면 오히려 불공평하다 할 것이다. 수술도 잘하고 정책수립, 경영수완도 뛰어나다면 많은 이가 직장을 잃을 것이다. 문과생은 구성원의 인적자원에 대해 고민하고 건전한 재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역시 고난도의 대외 민원도 담당한다. 나는 문과출신 중 재주는 곰이 넘게 하고 돈은 자신이 챙기는, 소위 유한계급(有閑階級)에 속하는 이들에 한정한다면 그들에게 어떤 비난을 퍼부어도 나는 동의할 수 있다. 소수가 물을 흐리고 있는데 그들을 핀셋으로 집어내야 조금은 세상이 덜 불만스러워질 것이다. 유일한 방법인 투표에서 그들을 걸러낼 수 있다.


이과생들은 인간관계에서 마저 1+1=2가 아니면 태생적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반면 문과생들은 1+1= 0,2,3... 얼마든지 답이 변화무쌍하다는 교육을 받는다. 내가 경영학 개론을 들을 때 교수가 한 말이다. “경영이란 주고받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수식화 할 수 없다.”그래서 입만 터는 놈들 같지만 빡빡한 사회에서 조직을 유지하고 관계가 부드러울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삼국지 등 중국 고전을 보면 전쟁터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자는 정작 리더나 장수가 아니라 입만 터는 책사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난제가 많다는 뜻이다. 문과생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의료문제 전반을 의료관계자에게만 맡기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가? 명문대, 법조계, 육사, 경찰대 카르텔이란 말이 왜 회자되고 있는지 잘 알 것이다. 우리가 불완전한 인간인 이상 견제와 균형은 반드시 필요하다. 팔은 안으로만 굽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은 이과 쏠림현상이 심해서 문제다. 정상적인 세상이 되려면 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도 중요하지만 먼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도록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 인간의 몸에 대해선 의사가 잘 알겠지만 정책과 경영은 입만 터는 자가 더 전문적이다고 보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조카가 의사인데 얼른 도망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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