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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하신 어머니의 간절한 생전 바람은 형제간의 돈독한 우애였다. 바람과는 달리 서로 원수처럼 대하지 않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갯벌에 사는 게는 옆으로 기어 다니는 개체지만 자기 자식한테 만큼은 똑바로 기어 다니라고 주문한다는 것처럼, 그런 말 할 자격 없는 나 자신도 아들 형제가 친밀하게 지내라고 수시로 주문한다. ‘희망사항으로 끝날지라도 자꾸 얘기해 주는 게 낳을 성싶어 그런다.’
서로는 분가하기 전까지 한 가족 구성원이었지만 독립과 함께 각자의 길을 걷게 됨으로써 상이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 한때는 공동 운명체였지만 이제는 “각자도생”을 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이해관계 문제가 부상하면 옛정은 별도로 접어 두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권력을 앞에 두고선 골육상쟁도 불사한다.
부모 재산이 어설프게 많으면 배분을 두고 심각하게 갈등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노부모 모시는 문제, 제사 등을 두고도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한다. 며느리 사위 조카까지 개입하다 보니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남들보다 더 먼 사람처럼 데면데면 지내거나 아예 절연을 하는 경우도 많다.
어릴 적 형제자매 간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옛 어른들이 하신 말이 있다. “형제, 자매 간은 전생에서 철천지 원수지간이었다.” 고 말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선 딱 들어맞는다. 이해득실 앞에서 인연이 그리 중요하겠는가? 뭘 모르는 유년기에도 서로 시샘하는 걸 보면 성장한 후 서로 잘 지낸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하고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겪어보니 지속적인 우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사는 형편이 비슷해야 한다. 경제력에서 차이가 심하면 시기심이 생겨나고 집안이나 부모 관련 일로 금전 분담을 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렵다. 친 형제자매간이야 그런다 치더라도 각자에게 딸린 배우자나 자식은 생각이 많이 다르다. 여유 있는 쪽에 일방적인 부담을 전가시키려 한다.
다음으로 아무래도 윗사람의 포용력이 중요하다. 아랫사람이 주도하기는 어려운 게 아직까지의 우리 정서다. 조금 양보하고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각각의 사정을 고려하여 권리와 의무를 분담하게 하여야 한다. 무조건 “1/n”식 적용은 피하는 게 좋아 보인다. 계산을 정확히 하는 경우치고 원만한 관계는 보기 드물다. 헤아림이 없으면 굳이 핏줄을 따질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형제자매라는 특별한 인연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모를 같이 한다는 건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DNA가 가장 비슷한 소중한 사이인 것이다. 잘되면 진심으로 축하하고 힘든 상황에 처하면 능력이 닿는 한도 내에서 서로 상부상조해야 한다고 본다. 대신 깨진 독에 물 붇기 같은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각자 자신의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시샘은 관계를 망친다.’ 적당한 정도라면 자신도 열심히 살려는 동기가 되기도 하겠지만 막무가내 식 시기는 화목의 최대 적이다. 형제자매를 경쟁상대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못난 사람이 가까운 사람을 못살게 굴고 분위기 깨뜨린다. 귀한 인연이 잘되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나눔이란 게 본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직계만 바라보고 사는 좁은 시선을 거둘 필요가 있다. 부모 형제에게 너무 각박하게 굴면 곤란하다. 자식들이 보고 배운다. 더군다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뿌리를 무시하는 처사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