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공고한 질서를 깨부쉈어야 한다

by 딛우

살면서 내게 무언가 쉽게 주어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떠올려보면 단연코 '응?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가훈을 적어오라던 숙제에 우리 엄만 큰 고민 없이'성실하고, 솔직하게 살자'라는 말을 던져주었고, 그걸 정답 삼아 묵묵하게 난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성실'을 무기로 버텨왔다.


성실을 다해봤자 뭐 하나 거저 주어지는 것이 없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내 인생의 모든 것.


나를 지켜본 누군가는 성실하기만 할 뿐, 세상 이치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로 여긴

내게 '네 주제를 알아라.'라는 말들을 더러 건네고들 했다.


그것도 매번 인생에 있어 내게 제법 중요한 선택지 앞에서.


'너는 그런 공부 그릇은 못 되지.'

'무슨 글을 써, 회사 다니면서 그게 되냐?

회사 관둘 거야? 대출은 뭘로 갚게?'

'하던 거 해.'

'그냥 적당히 직장 다니다가 시집가는 게 최고다.'


이 모든 말은, 아마도 긴 시간을 헤매기만 하던 나를 위한 말이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주제 파악'을 잘하라는, 어쩌면 나 대신 미리 경험했을지 모르는 실패를 겪은 자들의 충고.


비록 조금날이 서있을지언정, 그마저 나를 위한 말이었을 테다.


그래서 성실한 난 제법 주제파악을 잘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타인이 아닌 나를 더 들여다보는 게 맞다 여기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왜 굳이 그들이 말한 주제 파악이란 걸 성실하게 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아쉬움을 동반한.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뭘 또 하겠다고,

지금 네 상황이 그거 할 처지가 맞느냐고,

네 현실을 좀 알고 안정적인 것을 찾느라고들 하는 데,

그냥, 어? 그런가? 헤헤. 웃어주고 말았다. 듣지 않았다.


그 말을 했던 사람들을 미워하면 좀 후련해질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흘러갈 말들에 프레임을 씌워 주제 파악을 하자며 날 가둬둔 건 정작 나 스스로였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멋대로 한계를 정해둔 것도 나요,

다른 세계로 발을 옮겨 딛는 마음이 약했던 것도 나다.

모든 건 스스로가 온 마음으로 움직이지 않아서 시도조차 하지 못해 포기로 남은 결과였고,

나에겐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했던 과거로만 남았다.




그래서, 이제 와 적어도 주제 파악 따위 하지 않겠다며 한 발 디뎌낸 지금의 난 괜찮은가?


어쨌든 돈이 아쉬워 회사를 다닌다, 그것도 제법 성실하게.

(이 부분은 그들이 말한 주제 파악에 대한 의도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멀고 먼 꿈이지만 작가가 되고 싶어 글도 쓰고 있다.

일상을 재미있게 기록해보고 싶어 얼마 전엔 파이널컷도 구독했다.

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도록 여기저기 발을 뻗어 놓아야지 싶은 마음에 많은 걸 보고, 느끼고도 있다. 썩, 지금의 내가 나쁘지 않다.


백 번의 시도와 백 번의 포기가 있다 한들, 실패해도 계속 오로지 나만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결과를 이루어내는 것을 찾아 헤맨다. 더 이상 헤매는 걸 전만큼 두려워하진 않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주제 파악이란 말은 애초에 내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경솔하게 행동한다거나, 분수에 맞지 않게 본분을 잊은 적도 없으며 나 스스로를 꾸준히 검열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왔고, 몸가짐 또한 신중하게 행동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난 주제 파악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이, 덤벼도 될 인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시로 변해갈 내 주제를 다 파악한 냥 겁으로 점철된 내 공고한 질서를 진작 깨부쉈어야 했다.

나이 따지지 말고, 상황 판단 말고, 한계 정하지 말고, 주제파악 말고,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는 말처럼.


제발, 앞으로도 그렇게 하자고. 다짐하는 글이다.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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