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크다스보단 한 단계 위
미워하는 게 가장 쉽다고 생각했다.
못을 박고, 날을 갈아 선선함을 과시하며 나 만만하게 보면 다 죽여! 뿌웨에에엑! 대며 부리던
하찮은 객기,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변해가던 내 모습은 아마 다른 누군가에게
'저거 왜 저래.' 라던지, '지나가는 피곤한 인간 1' 정도였을 것이다.
미워하는 일은 명확히 나를 더 괴롭게 했다.
그 행위는 내가 외면한 사람보다 나에게서 돌아선 사람이 많아지게 하고, 이미 내가 벽을 쌓기도 전 떠난 사람들이 있게도 했을 것이다.
찐득하게 섞인 미움과 원망 실린 마음까지 드러내며 굳이 소리칠 필요는 없었는 데.
어차피 다른 사람들에겐 불필요한 감정인데, 몰랐다.
그때의 어린 나에겐 유일한 해소였겠고,
그저 불필요한 자기 연민에 남을 것 없는 방어가 유일했을 것이다.
자 들어 봐 내 마음은 이래!
나 괴로워!
미워 죽겠고, 싫어 죽겠는데 어쩔까?
나 힘들어! 힘들어!..라고, 징징거려 봤자. 돌아오는 건 사실 지나면 사라질 몇 마디의 위로?
또는 의미 없이 먹거나. 늘어지게 자거나, 상황을 잠시 외면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나고 보니 그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잠시 멈춰있을 뿐이다.
케케묵은 내 오랜 나쁜 버릇들은 참 성실하게 징글맞다. 그래서 지금도, 이때다 싶으면 고개를 내밀고 지들끼리 모여 음흉한 파티를 시작한다.
주변 정리를 하지 않게 하고, 잠도 재우지 않는다, 건강하게 먹지도 않으며, 산책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침대 밖을 나서지 않게 한다. (휴식과는 다르다.) 그래도 아주 버릇 나쁜 놈들은 아닌 게, 놀만큼 놀고 나면 또 잠잠해진다. 한참을 동굴에서 헤매게 하지만. 친절하게도 레드썬까지 해준다는 말이다.
이렇듯 감정이든 상황이든 해결은 남이 아닌 내 손에 달려있다. 그리고 지금의 난 좀 더 나은 해소법을 아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봐야 여태 유리 멘털이지만,
쿠크다스보단 한 단계 위다.
쿠크다스에서 유리로 조금 업그레이드된 나는 누군가 미워질 때 나에게 집중하기로 정했다. 미워할 상대를 떠올릴 틈에, 더 아껴줄 나에게 도움이 될 것들을 찾기로 한 것이다.
밉고 싫은 마음들이 스멀스멀 모르게 넘쳐날 때,
기준점을 나에게 두고, 시선을 돌려 나를 관찰하기는 사실 별 게 아니다.
허공에서 둥둥, 내려다보며 남을 보듯 나를 보면 된다.
자자, 어디 보자아...
얘(나)가 뭘 하고 싶나, 얘가 뭘 좋아했던가, 싫어했던가 기타 등등, 얘가 뭘 하다 말았지? 궁리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그렇게 보다 보면 정말 보인다.
특히나 부정적 감정에 둘러싸일 때, 나타나는 그 버릇들 사이로 가려져 있던 내가 일상을 버티게끔 하던 소소한 할 일들이 말이다.
그렇게 정신을 좀 차리고 나면,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적어보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내가 뭘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를 궁리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생각을 물다 가장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것 한 가지가 떠오른다.
가볍게 산책부터 시작하거나, 하다못해 계속 늘어만 두던 이불을 정리하고, 또는 커피를 한잔을 권하며 ‘내가 살게.’라고 어딘가에 다정한 말을 건넬 수도 있다.
고작 이 정도의 일들이지만.
기어코 하고 나면 달라졌다.
그리고, 고작 이 정도도 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더라. 그래봐야 누군가는 약하디 약한 나를 향해 유리멘털이라며 코웃음을 치겠으나, 쿠크다스보단 단단하다, 일단 지금의 난 그거면 되었다 친다.